달빛이 부서지는 어둑함 아래에서, 나는 낮은 호흡을 내뱉으며, 떨리는 심장을 움켜쥐었다. 이나즈마 청. 낯익고도 익숙한 곳. 그러나 달라 질 수 없는 잔잔함에 빗겨 사그라져가는 곳. 난간에 팔을 내건 채 기대어 섰다. 어둠에 가라앉아가는 이나즈마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 곳을 참 좋아했다. 언제나 이 곳에 서서 함께 웃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엔도와 처음 같은 팀이 되던날. 엔도 마모루와 함께 싸우던 날, 이 곳에서 엔도를 만났다. 저물어가는 석양을 보며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 뜨거움을, 그 그리움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데.
하지만 우리들이 가졌던 순수함은 어린 시절의 부질없는 것이 되어가고. 그 시절의 뜨거움은 사라져 간다. 내 심장은 더이상 타오르지 않는다. 내 심장은 차가운 홍옥이 되어 더이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 위에 손을 대보아도 그 시절 느꼈던 열기라던가 벅참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전해져오지 않았다. 어째서ㅡ? 반문해보지만 되돌아오는 해답은 없다. 애초 해답을 구하려 물은 것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어찌됐든 나는 이 길에 서기로 결심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엔도와 싸워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있었던 일이니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이 시내는 어둠 안에 갇혀있고, 저마다 빛을 내던 조명들도 하나둘씩 꺼져갔다. 이 밤에 먹혀가는 것이다. 먹히고 먹혀서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사라져가는 것이다. 엔도. 너는 이 어둠을 견딜 수 있겠나. 이 절망을 감당할 수 있겠나. 우리들은 이렇게 잠겨가는 아픔 위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거냐. 아니ㅡ, 이미 우리들의 선택은 정해져 있는지도 몰라. 너라면ㅡ. 너라면 나에게 어떤 말을 할까. 또 다시 이 어둠 위에 발을 내딛는 나를, 질책해 줄테냐. 아마 엔도라면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굳이 엔도를 불러내 오늘 얼굴을 보고 싶었던 건 그것을 확인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엔도가 정한 길을 확인하고 싶다. 엔도가 가진 열기를 느껴보고 싶다. 너의 심장은 여전히 불타고 있을까. 네 가슴에 품은 빛은 여전히 빛을 내고 있을까. 이 모든 어둠을 딛고 일어설 정도로. 이 어둠에도 꺼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을까. 아니면 너 역시 어둠에 먹혀 그대로 사라져가고 있는걸까. 우리들은 늘 함께 싸워왔다. 그렇기에 서로의 마음과 서로의 행동을 알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와서 나는 함께 싸우기를 포기했다. 늘 믿고 따르던 엔도와 다른 길을 걷기로 선택했다. 그것이 엔도의, 그리고 옛 동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거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그래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그래도 역시 나는, 멈출 수가 없다.
이해해 줄테냐, 엔도? 아마, 넌 그러지 못하겠지. 절로 쓴 웃음이 지어진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날지 알 수 없는 지독한 순환이기에. 그렇기에, 어쩌면 나는 이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가려 했던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곳은 내가 라이몬으로써 시작했던 출발점. 그리고 오늘의 이곳은 라이몬이었던 나를 끝내는 종결점이 된다. 잘부탁한다 라고 엔도와 손을 잡았던 곳이기에ㅡ. 그렇기에 해야만 한다면. 다른 길을 걸어야만 한다면. 반드시 여기에서 끝내고 싶었다. 반드시 여기에서, 그 손을 놓고 또 다른 길을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여겼다.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인가. 내가 하려는 일이 맞는 일인가. 아마 엔도는 납득하지 못하겠지만, 그리고 하루나도ㅡ, 납득하지 못하겠지만. 하지만 그래도 이건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멈춰버린 두근거림과 식어버린 열기 그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ㅡ. 가는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하는 수 밖에 없다. 이 모든 마음을 담아 전력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와라, 엔도. 전력을 다해서.
내가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너를 기다릴 테니까.
나는 눈을 감았다. 어둑하게 떨어지는 밤의 소리가 귓가를 매웠다. 두근대는 것은 없다. 망설일 이유도 없다. 나는 여기에 서 있고, 그리고 여기가 라이몬으로서 나의 종착역이 될 것이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여전히 가라앉아가는 어둠의 끝자락, 알 수 없는 두근거림으로 내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소리가 들렸다. 무겁게 끌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소리가 멈춘다. 나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던 그리움이, 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