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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상자/Six Dragons'에 해당되는 글 2

  1. 2015.12.21 [길선미+홍대홍] 사생(師生) 3
  2. 2015.12.09 길태미 등장하는 장면 정리 1
2015. 12. 21. 21:21

[길선미+홍대홍] 사생(師生) 글상자/Six Dragons2015. 12. 21. 21:21

아래 글은 24화의 길선미가 등장하기 이전에 쓰여진 글입니다

현재의 제 해석과 많이 다른 길선미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이미 써버린 글이라 지우기엔 넘 아쉽고, 다만 해석이 다소 다를 수 있음을 유의하여 보아주세요^^!









 그래도 그 고려 땅에 길태미를 기억하며 울어주는 단 한 사람이 있어서, 홍대홍에게 참 고마웠습니다. 

 

 커플링 없이 짧은 이야기입니다. 

 홍대홍과 길선미가 만났으면 좋겠다는 사심을 담아, 두 사람을 만나게 만든 날조본입니다.

 







  삼한의 제일이라 하는 검이나 고려의 수시중 자리에 올라 패악을 일삼던 길태미가 죽었다.

  이 소식은 웃음을 되찾은 민중의 환호성을 타고 일어나,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나라 전역에 퍼져나갔다.

 





 

 

사생(師生)

work by. bido.

 

 






 

  벌건 볼을 타고 술잔 위로 낙루가 떨어진다. 쌓여가는 슬픔만큼이나 고개는 자꾸만 수그러지는데 흐느낌은 좀처럼 잦아들 생각을 안했다.


  “태미야…….”


  홍대홍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제자의 이름을 부르며, 몇 번째인지 모를 잔을 채웠다. 묘상의 허를 차는 소리에도 요지부동이다. 환희의 기쁨이 지배한 땅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떠나간 제자의 얼굴을 붙잡은 채 놓지 못했다. 고려에 있어서는 역적이며 탐관오리였고 안하무인이었을지 모르나, 자신에게 있어서만큼은 여전히 꽃반지를 좋아하는 작은 어린아이였다. 타들어가는 목을 술로 축이며 하염없이 눈물을 훔친다.


  “삼한제일검이 되던 날도……. 그 날 홍륜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맘껏 기뻐해주지 못했는데…….”

  “우라질! 또 뭔 헛소리여! 길태미 그 작자가 삼한제일검이 되던 날부터 우리는 지옥이 시작됐다 이 말이여!”


  묘상이 탁자를 두드리며 성을 냈다. 무휼을 길태미처럼 만들어달라며 쫓아올 때는 언제고,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하소연은 완전히 민중의 편이었다.


  “그걸 기뻐하긴 왜 기뻐해! 길태미가 아니라 홍륜이 살아있었으면 우리덜이 살기가 이 지경은 아니었을 것이여!”

  “태미 그 놈이 어려서는 아주 착했어……. 꽃반지도 좋아하고…….”

  “, 그 얘기만 지금 몇 번째인 줄 아는 거여!?”


  듣다 못한 묘상은 결국 교의를 박차고 일어섰다. 눈물 젖은 홍대홍의 눈동자가 묘상을 올려보지만, 먹먹한 시선에 담긴 것은 오직 세상을 떠나버린 삼한제일검 뿐이다. 소꿉놀이를 하며 웃기 좋아하던 계집 같은 사내아이 한 명 뿐이다. 묘상은 결국 홍대홍의 손에서 잔을 빼앗았다. 억지로 일으켜 세우더니 냅다 집밖으로 내몬다.


  “나가! 가서 좀 바람이라도 쐬고 와! 이렇게 컴컴한 데서 죽상이나 하지 말고!”

  “누님…….”

  “눈물바람 다 마르기 전엔 들어올 생각일랑 말어!”


  매몰차게 대문이 닫혔다. 덩그러니 남겨진 홍대홍은 축축하게 젖은 눈가를 문질렀다.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발길을 돌린다. 술기운에 발밑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사람이 여럿으로 겹쳐 보여 비척댔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걸음을 옮겼다. 정수리 위를 밝히는 햇볕이, 야속할 만큼 눈부시다.

  저잣거리는 길태미와 홍인방 일파가 실각하고 처형된 것에 대한 기쁨으로 물들어있었다. 모든 백성들이 새로운 삼한제일검을 이야기했고 궁금히 여겼으며 더 나아질 고려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다. 길태미를 그와 같은 괴물로 기른 것이 바로 이 고려일진데, 끝내 그에게 돌을 던지며 사후조차 편히 보내주지 않는다. 그의 꽃 같은 웃음을 다시 볼 수 없기에 울고 있는 이는, 고려 천지를 뒤져보아도 홍대홍 한 사람 뿐이었다. 홍륜은 그보다 더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길선미가 이곳에 있었다면 태미를 위해 함께 술 한 잔 마셔줄 수 있었을까. 손을 떠난 제자들에 대한 그리움만 커간다.


  “어디서 뭘 하는 거냐, 선미야……. 지 동생 죽은 건 알고 있으려나……?”


  한탄에 가까운 혼잣말이 입안을 맴돌았다. 얼굴을 보지 못한 지 십년도 넘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가 노국공주의 호위무사로 이름을 날리던 청년 시절이었으니, 그도 지금이면 제 아우처럼 여기저기 솟아나는 새치로 곤욕을 치르고 있을 터였다. 붉게 충혈 된 눈동자 사이로 간만의 미소가 피어오른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고 하여도 얼굴은 태미와 같으니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태미의 얼굴에서 화장을 좀 지우고,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면 그가 바로 길선미였다.


  그래 딱 이런 얼굴을 하고 있겠지.


  홍대홍은 취기가 서린 눈동자를 들어, 눈앞으로 다가오는 낯선 그림자를 훑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살피는 통에 그 자가 걸음을 멈춰 선다. 술을 너무 당긴 탓에 헛것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흔들리는 눈앞에는 화장도 하지 않고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친 태미가 있었다. 웃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서있다.

  홍대홍은 눈살을 찌푸렸다.


  “…… 죽었지 않느냐.”

  “…….”


  질문을 던졌는데도 낯선 그림자의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 위화감이 들었다.


  “죽은 놈이 왜 구천을 떠돌아? 저승에도 받아주는 이가 없더냐?”

  “……죽은 것은 제 아우이지요.”

  “……?”


  영문을 몰라 우두커니 서있던 홍대홍의 표정이 슬그머니 굳어졌다. 목소리가, 아니, 얼굴이 달랐다. 길태미가 아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스승님. 길선미입니다.”


  푹 눌러 쓴 갓을 벗으며 꾸벅 인사를 건네는 통에 홍대홍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한 마디 말조차 새어나오지 않는다. 사방으로 뻗쳐가던 수만의 생각들은 사라지고, 어지럽던 시야가 제자리로 돌아와 선명히 초점을 맞춘다. 홍대홍의 입이 떡 벌어졌다.


  “, 길선미!?”

  “. 그렇습니다.”

  “너 정말로 길선미냐?”


  믿기지 않아 덥석 손을 내밀었다.

  닿은 손등이 거칠기 짝이 없다. 역경어린 삶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굳은살은 투박했고, 만지는 곳마다 흉터 또한 가득이다. 관리라는 말을 알지 못하는 손톱은 울퉁불퉁하고 비뚤게 자랐다. 손끝만 더듬어도 길태미가 아닌 것이 확연했다. 가까스로 올려보니 수염은 덥수룩하고 무엇보다 눈썹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큰 흉터자국이 선명했다. 구각만 살짝 올라간 무표정한 얼굴이다. 그에 반해 홍대홍의 구변은 점점 벌어져 한없는 기쁨을 머금었다.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너마저 죽은 줄 알고 걱정했다! 어째 그동안 한 번을 찾아오지 않았느냐?”


  홍대홍의 질문에 길선미의 표정이 미묘하게 흐트러졌다. 하긴, 제자들에게 언제부터 제대로 된 스승 취급을 받았다고. , . 홍대홍은 목을 가다듬으며 다시 물었다.


  “태미가 죽었다는 소식은 들은 게냐?”


  개경을 고사하고 전국으로 퍼져나간 소문이니 모른다면 그 또한 이상할 터였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몰랐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어릴 적에는 워낙 우애가 좋았다. 계집질이나 하는 길태미가 또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던 것도 늘 그의 곁을 따라다니며 돌보는 길선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종의 사건으로 연을 끊었다고는 하나 피가 통하는 형제였다. 아우의 죽음에 무감할 리 없었다.


  “……직접 보았습니다.”

  “?”


  허나, 홍대홍의 예상과 다르게 길선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는 벗었던 갓을 도로 쓰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우님 가실 때 그 자리에 있었지요.”

  “그 자리에 있었다고? 길태미가 이방지에게 패한 그 자리에?”


  길선미가 가볍게 끄덕이자 홍대홍의 입이 떡 벌어졌다.


  “동생이 죽어가는 것을 그냥 지켜봤다는 것이냐?”

  “. 보았습니다.”

  “, 너는…….”


  말문이 막혔다. 거리 곳곳에서 흘러나는 웃음소리가 유달리 무정하다. 그러나 그 어떤 무정함도 눈앞에 선 이 사내 같지는 않을 것이다. 홍대홍의 떨리는 손이 선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너는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냐? 하나뿐인 동생이 눈앞에서 목숨을 잃어 가는데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고 있었다고? 태미가 탐관오리라서냐? 연을 끊은 사람이라서 이제는 형제로도 보이지도 않는 것이야!? 아니면 태미가 그렇게 죽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사정없는 질책이 쏟아진다. 함께 태미의 죽음을 슬퍼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유일한 핏줄의 동요 없는 표정에, 가까스로 참았던 서글픔이 무너졌다. 외로운 아이였다. 외로움을 참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자신의 죽음을 환호하는 세상의 목소리를 들으며 외롭게 삶을 마쳤다. 그런데 형이라는 작자마저 그로부터 등을 돌리다니.


  “너도 이 저잣거리의 사람들과 똑같은 심경으로 네 아우를 바라본 것이야?”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스승의 진심어린 목소리에도 길선미의 얼굴은 묵묵했다.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스승을 바라보다가 느리게 입술을 연다.


  “무사가 결투를 했고, 결과 패배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는 무가의 상사이며 자연스러운 도리입니다. 제가 끼어 들 자리가 아니지요.”

  “도리? 무사의 도리보다, 형제의 도리가 먼저 아니더냐!”

  “아우님도 그런 도움은 바라지 않았을 겁니다.”

  “바라지 않으니 죽게 내버려뒀다? 도움 좀 받고, 도망 좀 치는 게 뭐가 어때서! 사나이 자존심에 상처 좀 남는 것이 목숨보다 중할 성 싶으냐고!”

  “…….”


  길선미는 끝내 침묵했다. 반문을 연잇는 홍대홍의 눈을 피해 허공을 응시한다. 대답 없는 그에게 서려있는 상념이 무엇인지, 스승으로서도 알 도리가 없었다. 애타게 그를 흔들던 홍대홍은 이내 맥이 풀어진 손길로, 붙잡았던 소매를 놓았다. 체념에 가까운 한이었다.

  이제 와 후회를 품어도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개경에는, 어쩌다가?”


  한참이나 침묵으로 흘러나오던 한숨은 이내 눈앞에 나타난 제자를 향해 의문을 품었다.


  “이리저리 떠돌다보니 발길이 닿았습니다.”

  “……네 동생의 마지막을 눈에 담으라는 천의 계시인게지.”

  “그런 것도 믿으십니까?”


  농인지 참인지 알 수 없는 질의였다. 그 면상을 바라보며 홍대홍은 깊은 탄식을 흘렸다. 태미를 위해 술잔이나 기울이던 스스로가 한심스러워질 정도의 비정이다. 하나뿐인 동생의 죽음을 눈에 담으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렷다. 지금처럼 덤덤히 바라보다, 잘 가시오 하고 미련 없이 돌아섰으리라. 십여 년이라는 긴 세월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뻔뻔스럽게 찾아오기나 하는 자이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혹여나.


  “……나를 부러 찾아온 것이냐? 아니면 지나가다 우연히 보인 것이냐.”


  제자라는 놈들에게 스승 대접을 받은 기억이 없다. 애써 찾아와 담소를 나눌 녀석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이라 질문을 하고도 즉시 후회가 따른다.

  허나 길선미의 대답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이성계 장군의 가별초에 합류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 근처에서 기다리다보면 마주칠 수 있으리라 여겨 기다린 것입니다.”

  “기다렸다고? 나를?”

  “그렇습니다.”

  “??”


  영문 모를 노릇이다. 안부인사 한 번 전해온 적 없던 놈이 왜 이제 와서?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길선미의 표정이 달라졌다.


  “동방쌍룡 문하, 소인 길선미. 스승님을 뵙고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 이리 찾아왔습니다.”


  홍대홍의 멀뚱멀뚱한 표정 앞으로 제 시선을 가져오는 제자의 얼굴이 어쩐지 불길하다. 홍대홍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부탁이라니? 그게 무엇이냐?”

  “들어 주겠다 약조해주신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감이 길선미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소리쳤지만 아무리 제 핏줄에게 냉담한 녀석이라 해도 스승이 되어 십여 년 만에 찾아온 제자를 내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홍대홍은 헛기침을 두어 번 흘리며 바로 가슴을 폈다.


  “어려서부터 봐 왔고, 아들처럼 키운 너다. 난 네 놈처럼 인의를 함부로 내치는 자가 아니니 내가 무엇인들 못 들어주겠느냐. 그러니 아버지에게 청한다 생각하고, 어디 한 번 말해 보거라.”


  거들먹거리며 고갯짓을 하는 스승일지라도 제자는 진심으로 감사를 담아 경의를 올렸다. 귀찮으니 서둘러 얘기해보라는 손짓이 이어진다. 길선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속에 담아둔 바람을 꺼냈다.


  “아우님의 시신을 거두어주셨으면 합니다.”

  “…….”


  멍하다.

  홍대홍은 방금 자신의 귓가를 스쳐간 길선미의 목소리를 몇 번이나 곱씹으며 돌이키다가, 이내 버럭 소리를 외쳤다.


  “뭘 해달라고!?”

  “스승님께서 아우의 시신을 거두어 주십사 말씀드렸습니다.”

  “미쳤어!? 길태미의 시신을……!”


  목소리가 너무 커 저잣거리의 시선이 몰렸다. 홍대홍은 주변을 의식하며 황급히 소리를 낮췄다.


  “길태미의 시신은 역적의 것이라 사지를 찢고 목을 베어 효시해야 하는 것임을 모르느냐? 역적의 시신을 거두어달라니 나보고 역적이 되라는 소리지!”

  “압니다. 그러니 제가 할 수 없어 스승님께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뭬얏!?”


  제자의 뻔뻔함을 이를 말이 없다. 홍대홍은 묘상이 자주 그랬던 것처럼 허를 찼다. 태미가 떠난 것이 아무리 슬프다고는 하나 이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저는 이미 길태미의 쌍생으로 얼굴이 알려져 있어 시신에 접근을 할 수도, 그렇다고 시신을 내어달라 청할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또한 아우를 길러주신 이인겸 합하 또한 현재 자유로이 움직이실 수 없는 몸이지요. 그러나 스승님께서 모시고 계신 이성계 장군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나라의 지존에 가까운 분이며, 이번 숙청을 책임지고 계신 실권자시니 그분께 부탁을 드린다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가노 중 한 놈을 빼오는 것이라면 몰라도, 건지려는 시신이 길태미라면 얘기가 다르지!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는 거냐!? 말도 안 되는 소리!”

  “스승님께서는 저희의 아버지와 다름없지 않습니까. 본디 먼저 간 자식의 시신은 아비가 거두는 것이니 스승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이치에 맞지요.”

  “니들이 언제부터 나를 아비처럼 여겼다고!?”

  “방금 스승님께서 저희를 아들처럼 키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인의를 저버리지 않으시는 스승님이니 저와의 약조를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어이가 없는 주장에 홍대홍은 울상이 되었지만 길선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어려서부터 한 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태미보다 더 꺾기 어려운 것이 선미였다.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하늘이 노랗게 흐려졌다. 아직 술이 덜 깬 것은 아닐까. 태미를 보내기 싫은 슬픔이 환청을 만들어 낸 것 아닐까. 그러나 반복되는 한탄에도 눈앞에 선 길선미는 사라질 생각을 아니했다.


  “태미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 것 아니었느냐? 시신은 왜 거두려는 거야.”


  혀를 타고 구르던 의문이 한숨처럼 터진다. 길선미의 고집은 실리에 맞지 않았다. 홍대홍은 고개를 들어 그의 제자를 바라보았다. 쉽사리 입은 열리지 않았으나 비로소 얼굴에 작은 미소가 걸린다. 무엇을 찾는지 천공을 바라보던 그는 다시 수백의 발자국이 지나는 저잣거리의 길가를 응시했다.

  이제는 어디에도 없는 화사한 얼굴이 스쳐간다.


  “꽃반지를…….”


  가까스로 열린 길선미의 입술이 살풋 떨렸다.

  눈가가 일렁인다. 홍대홍이 말을 잃은 듯 그를 바라보았다. 볕을 받아 반짝이던 고운 눈동자가 물기에 흔들렸다. 고려의 모든 반짝이는 것에 눈을 빛내며 기뻐했던 제 동생의 빛깔을 닮았다. 눈을 감으니, 맺혔던 영루가 흐른다. 쏟아낸 슬픔은 한 방울. 딱 한 방울뿐이었다.


  “……꽃반지를 끼고 놀던 아이의 어여쁜 손가락이 거리에서 짓밟히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일순 드러났던 슬픔이 사라진다. 미소도 눈물도 수그러들었다. 아무 감정도 없는 듯이, 아무 변화도 없는 듯이, 그는 여전히 덤덤한 표정을 하고 서있었다. 꿈이라도 꾼 것처럼, 한 순간에 지나가버린 찰나다.


  “제가 나섰다면 목숨은 살릴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평생을 불구로 사는 것과 같습니다.”

  “…….”

  “아우님은 그런 삶을 견디지 못했을 겁니다.”


  먹먹하다. 찹쌀떡이 목에 걸린 것처럼 답답했다. 홍대홍은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치는 설움에 한 마디를 답하지 못했다. 스승에게서 답이 없으니 잠시 고민하던 제자는 이내 떠나기를 자청했다.


  “아무쪼록, 아우님의 시신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거듭 고개를 숙이며 건네는 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길선미는 스승을 남겨둔 채로 돌아섰다. 끝까지 멋대로의 부탁만을 남기고 제 갈 길을 가버린다.

  어려서부터 버릇없고 안하무인에 스승을 공경할 줄 모르는 녀석들이었다. 스승이라 불리는 자신 또한 사실은 홍언박과 이인겸의 집안을 상대로 쏠쏠한 재미나 볼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천성은 사기꾼이며, 아비도 아니고 형제도 아니었다. 참된 스승이라고 하기에는 스스로도 민망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돌아서는 제자의 등을 보니 눈가가 벌겋게 물들었다. 코끝이 아려온다. 그를 보내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 다음번에는 홍륜처럼, 태미처럼, 시체가 되어 돌아올지 모를 일이다. 다들 스승을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뜨는 되바라진 녀석들이니 길선미 또한 다르지 않을 터다. 십여 년 만에 만나 제자에게 국밥 한 그릇 얻어먹지도 못했는데, 이것이 마지막일 지도 모른다.


  “! 길선미! 고뿔! 고뿔 조심해라! !?”


  눈물로 엉망인 목소리를 담아 홍대홍은 있는 힘껏 소리쳤다. 멀어져가던 길선미가 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돌아선다. 느리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다시 걷던 길로 몸을 돌렸다. 자꾸만 그 그림자 위로 태미의 모습이 겹쳐져 홍대홍은 결국 자리에 주저앉았다.


  입술을 깨물고 참아내던 흐느낌은 점점 제 소리를 갖추어가고, 꾸역꾸역 참아내던 눈물이 기어이 터졌다. 보내버리면 그만인 것을 쉽게 놓지 못한다. 어리석은 것을 알면서도 울음이 새어나온다. 넘치는 눈물이 볼을 적시고 코를 적시고 입술과 턱을 적신다. 괴물처럼 오열하는 끓는 소리가 잿가루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다. 저잣거리의 시선은 개의치 않았다. 시원히 울지 못하는 또 다른 제자의 몫까지 끌어안았다. 기쁨에 겨운 이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는 것이 그의 몫이다. 아무도 울어주지 않는 곳에서, 모두가 환희로 가득한 곳에서, 울며 보내는 것이 그의 몫이다서럽게 통곡하는 그의 울음은 화려했던 태양이 저물고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눈부시게 아름다운 웃음소리가 전부 수그러들어 제 집을 향할 때까지, 그치지 않고 하늘을 수놓았다.


  고려 말기, 가장 화려했던 들꽃이 진 자리를 기억하며, 또 하나의 수수한 들꽃이 걸어가는 등을 기억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었다.


  오직 홀로 우는 사람,

  그의 이름은 스승이었다.    








스승과 제자를 아우르는 말, 사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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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태미 등장하는 장면 정리  (1) 2015.12.09
:
Posted by B.do
2015. 12. 9. 15:33

길태미 등장하는 장면 정리 글상자/Six Dragons2015. 12. 9. 15:33

제가 생각날 때마다 찾아보고 싶어서 <육룡이 나르샤>의 길태미 등장하는 편 정리했습니다 

정리해놓고 보니 3화, 9화, 17~18화가 왜 레전드인지 알 수 있는......  


관심있는 분 같이 보시라고 공개합니당

정주행 달리면서 일일히 기록한 것이라서 몇 초 단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 길태미 비중小 

★★★ 길태미 비중

 


<1>

★★☆ 태미 등장하던 날 15:10 ~ 15:45

★☆☆ 손톱관리태미 16:38 ~ 17:08

★★★ 먹방태미1(수육먹방) 30:36 ~ 32:01

★★★ 내려태미 39:47 ~ 41:05

☆☆☆ 도화전 잔치(대사 없음) 44:50 ~ 54:08

 

<2>

★☆☆ 과거태미(공민왕 시해의 날-우왕1년) 07:17 ~ 08:45

★★☆ 태미 삼한제일검 되던 날 09:45 ~ 11:55

★★★ 찻잔태미 14:13 ~ 14:52

☆☆☆ 궁금태미(대사없음) 15:37 ~ 17:33

★★★ 박장대소태미 24:16 ~ 25:12

★★☆ 사신태미 41:30 ~ 53:13


<3>

★★★ 고신태미 1:41 ~ 4:00

★★☆ 어르신러너태미 06:29 ~ 07:23

☆☆☆ 눈치태미1(대사없음) 08:22 ~ 09:50

★★☆ 소름태미 21:27 ~ 22:01

★★★ 뽀뽀태미1(아들뽀뽀) 23:02 ~ 23:36

★★★ 시비태미(첫 검술) 36:31 ~ 39:12

★★★ 수육잡기태미 42:05 ~ 42:57

★★★ 고성방가태미 42:57 ~ 43:31

★★★ 신난태미 45:15 ~ 46:59

★★★ 뽀뽀태미2(사돈뽀뽀) 47:12 ~ 48:25

★★★ 고주망태 태미 48:43 ~ 51:16

 

<4>

★★☆ 도당태미1(변명태미) 26:54 ~ 30:27

★★★ 우리나라태미 30:36 ~ 32:20

★☆☆ 사돈자랑태미 34:21 ~ 34:45

★★★ 버럭태미 37:15 ~ 37:37

 

<5>

★★☆ 도당태미2(발끈태미) 02:27 ~ 03:38

★★★ 수사태미(챙챙챙~) 07:47 ~ 09:35


<6>

★☆☆ 눈치태미2 22:13 ~ 23:51

 

<7>

★★★ 잔소리태미, 솔깃태미 32:54 ~ 35:41

 

<8>

★★☆ 걱정태미 39:32 ~ 40:00

★★☆ 아부태미 41:37 ~ 42:40

 

<9>

★☆☆ 도당태미3(아우, 시끄러!) 08:13 ~ 09:00

★★★ 칠기태미 09:58 ~ 10:30

★★★ 이르기대장 태미 13:26 ~ 13:46

★☆☆ 황당태미 15:35 ~ 15:57

★★☆ 궁지태미 35:35 ~ 36:30

★★★ 도당태미4(태미야...) 37:00 ~ 39:00

★★★ 고민태미 40:53 ~ 41:20

★★★ 고백태미 42:27 ~ 45:03

★★★ 도당태미5(무릎을 꿇어라) 45:08 ~ 45:40

★★☆ 부끄태미 47:33 ~ 48:17

★★★ 쌍검태미 48:48 ~ 50:15

★★☆ 변심태미 52:27 ~ 53:14

★☆☆ 도당태미6(찬성태미) 54:00 ~ 57:51

 

<10>

★★★ 도당태미7(반항태미) 01:48 ~ 03:05

★★☆ 뿌듯태미, 삐침태미 13:39 ~ 15:27

 

<11>

★★☆ 논어태미 03:28 ~ 04:53

★★☆ 저요태미 05:18 ~ 06:35

★★★ 초조태미 17:42 ~ 18:27

★★☆ 변론태미 38:00 ~ 39:38

★☆☆ 도당태미8(막가태미) 51:15 ~ 54:23

★☆☆ 도당태미9(충격태미) 55:17 ~ 57:00

 

<12>

☆☆☆ 도당태미10(대사없음) 00:50 ~ 01:10

☆☆☆ 도당태미11(대사없음) 02:00 ~ 02:25

★☆☆ 멘붕태미 04:27 ~ 05:15

★☆☆ 회의태미 10:28 ~ 11:45

★★☆ 한걸음태미 18:50 ~ 20:02

★★☆ 깨믈태미 28:15 ~ 29:12

☆☆☆ 도당태미12(대사없음) 30:46 ~ 31:29

★★★ 필체명인태미 31:29 ~ 33:33

★★★ 추적태미 49:05 ~ 50:30

 

<13>

★★★ 옥돌요정태미 00:22 ~ 04:20

★★★ 혼잣말태미 35:53 ~ 36:06

★★☆ 붕붕방방태미 38:14 ~ 39:25

★★★ 뒷담태미 43:16 ~ 44:08

 

<14>

★★★ 감탄태미 06:30 ~ 07:14

★☆☆ 까꿍태미 39:15 ~ 40:55

★★☆ 당황태미 42:51 ~ 44:12

 

<15>

★★★ 내가이겨 태미 03:27 ~ 04:08

★★★ 울컥태미 14:46 ~ 15:37

★★★ 내기태미 20:27 ~ 23:20

★★★ 설득태미 24:10 ~ 24:50

★★★ 동방쌍룡 태미 36:18 ~ 39:07

★☆☆ 도당태미13(사돈옹호) 43:20 ~ 44:15

☆☆☆ 어리둥절태미(대사 없음) 44:46 ~ 45:04

★★☆ 행동대장태미 46:50 ~ 47:17

★☆☆ 재촉태미 52:50 ~ 53:10

☆☆☆ 도당태미14(대사없음) 53:54 ~ 55:10

☆☆☆ 도당태미15(대사없음) 56:00 ~ 57:55

 

<16>

★★★ 불안태미 06:10 ~ 07:14

★★☆ 안심태미 14:05 ~ 14:53

 

<17>

★★★ 탈출태미 14:40 ~ 15:37

★★★ 변복태미 20:25 ~ 20:58

★★★ 사망플래그 태미 28:35 ~ 31:35

★★★ 배고파 태미 41:00 ~ 41:25

★★★ 짜증태미 43:04 ~ 43:46

★★★ 분칠태미 44:30 ~ 45:44

★★★ 아침밥 홍보대사 태미 46:24 ~ 47:03

★★★ 먹방태미2(국밥먹방) 50:35 ~ 53:00

★★★ 모세태미 53:28 ~ 54:05

★★★ 따까리태미 54:13 ~ 58:30

 

<18>

★★★ 길태미 최후의 날 00:00 ~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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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