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가 키요시 울리는 책 글상자/Kuroko's basket2013. 9. 10. 23:20
# 2013년 2월 코믹에 발행되었던 무료배포지 입니다
# 개인적으로 문체나 캐릭터해석이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나름의 첫 목일책이었기에 애정을 가지고....있...나?
휴가가 키요시 울리는 책
vol 1. 휴가
“지금 그 말, 진심이야?”
낮게 가라앉아가는 목소리와 함께 키요시의 걸음이 멈췄다. 무게가 실린 침묵이 진중한 바람이 되어 귓가로 잦아든다. 휴가는 눈을 감았다. 아아 그래. 뱉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나 한 번 과거가 되어버린 언어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따라 허공으로 흩어진지 오래였다. 휴가는 표정을 굳힌 채 고개를 돌려 키요시를 마주했다.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텁텁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래. 진심이야. 그래서 뭐.”
“…….”
키요시의 눈썹 끝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저물어가는 햇살을 받아 일순 반짝였던 동공마저 탁하게 가라앉는다. 휴가는 그 세밀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일자로 굳게 닫혀 열릴 틈을 주지 않는 입술부터 눈썹 사이를 선명하게 자리잡은 미간주름까지 매일 보는 감정의 흐름을 놓칠 리가 없다. 격하게 흩어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득하게 뭉쳐지는 것도 아닌 미적지근한 표정을 장시간 받아내는 것은 역시나 버거웠다. 여기에서 해결을 보지 않으면 쉽게 풀리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휴가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걸음을 재개하며 키요시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였다. 평소처럼 곤란하다는 듯 투덜대면서도 따라올 거라고, 아니 따라와 주었으면 했지만, 다섯걸음 쯤 발을 옮길 때 까지도 그의 기척은 없었다.
“…휴가.”
다시 들려온 목소리는 사라질 듯 희미해서 휴가는 저도 모르게 또 한 번 멈춰 서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마주하게 될 녀석의 표정을 가늠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여름 한 낮의 덥기만 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불어오는 바람은 냉기가 서려 지독히도 차가웠다. 하지만 어떻게 될 걸 알았다 해도 자신은 잡을 수 없었을 거라고, 휴가는 생각했다.
“오늘은 먼저 갈게.”
돌아서는 발길이 느껴졌다. 함께 걷던 발자국이 멀어져간다. 휴가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로 그렇게 나오시겠다고? ‘키요시 답지 않은 행동’에서 오는 이질감이 불쾌해 진저리가 올랐다. 이젠 몰라. 어디 하고싶은대로 해보라지, 키요시 주제에. 휴가는 어떤 긍정의 말도 부정의 말도 덧붙이지 않은 채, 멈췄던 걸음을 재개했다.
vol 2. 키요시
- 상관없잖아. 하루쯤 연습에 안 나와도.
정말로 별 것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울리던 목소리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칠판을 어지럽히며 나부껴대는 숫자들은 의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의미 모를 수식들을 웅얼거리며 나열하는 교사의 목소리도 인지되지 않았다. 어젯밤부터 줄곧 자신을 괴롭혀 온 그 녀석의 한 마디 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전부인 것만 같았다. ‘상관없잖아.’ 내쳐지듯 던져진 휴가의 언어가 머릿속에서 재생될 때마다 가슴이 한웅큼씩 무너지는듯한 착각이 일었다.
휴가가 책임감이 강하고 자신보다 팀을 먼저 위하는 주장이라는 것쯤은 누군가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이야 말로 휴가의 그런 점들을 높이 평가한 사람이기에 그 어떤 거리낌도 없이 주장의 자리에 추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휴가가 아무 이유도 없이 연습에 빠질 리가 없다. 연락도 없이 체육관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틀림없이 알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믿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평소와 다름없는 걸음으로,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하교하는 휴가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 어, 아무 일 없어.
집에 가는 거야, 휴가? 연락은 왜 안 받았어. 어디 아픈 건 아니고? 걱정스럽게 던진 질문들은 덤덤하게 돌아온 한 마디에 일축되어 버리고 말았다. 휴가를 만났다는 반가움에 피어올랐던 웃음은 햇빛을 받지 못한 잎사귀마냥 금세 시들어버린다. 정말 아무 일 없다고? 진지하게 묻는 질문에 눈 한 번 마주쳐주지 않고 같은 대답만을 반복했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 고요하고 너무나 침착해서 두 사람의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작용들마저도 가라앉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오늘 연습에 왜 안 나왔어? 딱히 해명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믿고 있었으니까.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지지 않은 불친절한 대답이라도 사정이 있었다거나 한번 만 이해해달라고 해주었다면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족했을 것이다.
- 상관없잖아. 하루쯤 연습에 안 나와도.
또다. 또 같은 목소리가 뇌리를 때렸다. 뒷목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전기가 오르듯 쥐가 났다. 키요시는 인상을 찌푸리며 관자놀이로 손을 가져갔다. 사실 그는 뱃속 저 편에서부터 꾸역꾸역 올라오는 이 찝찝한 감정들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휴가의 퉁명스러운 대답이 화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면상에 대놓고 네가 싫다, 와 같은 소리를 하는 휴가였지만 그런 배려심 없는 언사에 발길이 돌아섰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주장이라는 책임을 져버린 것에 대한 실망감? 아니. 실망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이겠지만 그것도 백퍼센트 정답은 아니었다. 자신이 없는 긴 공백의 시간 동안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그 위치를 감당해준 것이 휴가라는 사실에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하고 있다. 그런 자신이 실망이니 뭐니 하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은 오히려 사치에 가깝다고 생각하니까. 휴가가 끊임없이 쌓아 올려온 계단을 그런 식으로 치부해버린다면 오히려 용서하지 말아야 할 대상은 자신일 터였다.
하지만……. 그러면 어째서?
복잡한 수원들이 구질구질하게 얽혀 있어, 어디가 이 실타래의 출발점인지 찾아내기는 어려워보였다. 그냥 한 순간의 욱하는 감정이었을까. 그런 식으로 먼저 돌아간 것에 대해서, 사과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또 한번 뇌리가 울렸다. 심장이 아프게 죄여온다. 풀어지던 눈썹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화는 났다.
그리고 당분간은 휴가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vol 3. 휴가
페인트 존까지 치고 들어간 키요시를 미토베와 카가미가 막아섰다. 쉽사리 슛을 할 수 없어 진격하던 걸음을 멈춘다. 커다란 두 녀석이 달려들어 수비하는 덕택에 골대까지 이어지는 길이 막혀버렸다. 그는 우왕좌왕하지 않고 침착하게 길을 살폈다. 마침 두 사람의 수비만으로는 키요시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이유인지 3점 슛 라인 바깥의 휴가에게 붙어있던 마크가 떨어져나왔다.
“패스해!”
휴가가 키요시를 향해 소리쳤다. 아주 짧은 순간, 허공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그러나 아주 잠시일 뿐이었다. 키요시는 공을 쥔 채로 강행돌파를 선택했다. 가볍게 페이크를 섞어 미토베를 떼어내고, 카가미와 동시에 뛰어오른 순간 늦게 내는 권리를 사용해 바로 옆으로 달려온 후리하타에게 패스했다. 후리하타가 짧게 무릎을 굽혔다가 쏘아올린 슛이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잘했다. 후배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리며 키요시는 흡족한 듯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 와중에 스치는 휴가의 어이없는 표정 같은건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연습 중지! 잠시 쉬겠다.”
아직 시합이 종료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휴식이 선언됐다. 키요시, 너 나좀 잠깐 봐. 키요시가 못마땅한 얼굴로 돌아보는데 휴가가 그의 곁을 지나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연습복으로 이마의 땀을 닦던 키요시의 얼굴이 굳어진다. 그래도 그는 생각보다 얌전하게 뒤를 따라나왔다.
“오늘 대체 뭐야? 왜 그런 식으로 플레이 하는 거냐!”
누가 들을 새라 학교 뒤뜰까지 끌고 나와선 다짜고짜 면상에 대고 냅다 소리친다. 평소의 자신답지 않게 예민해져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서도 키요시 또한 평소의 헤실거리는 웃음이나 여유섞인 엉뚱함으로 반응하지 않는 다는 점이 못마땅했다. 그저 굳어진 시선만이 휴가의 성난 동공 위로 가볍게 내려앉는다.
“시합 중엔 개인적인 감정을 싣지 마! 방금 전엔 왜 패스하지 않았지?”
“……골은 넣었잖아. 뚫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패스로 돌렸으면 3점이었어!”
“점수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런 수비를 뚫어보는 것도 필요한 연습이고, 1학년에게 슛을 해볼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해.”
“키요시!”
휴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화가 났다. 진심이 아니잖아? 아무리 좋은 구실을 붙여다가 변명한다 해도 진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 오고갔던 시선 속에서 느껴졌던 질척한 감정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사실 키요시가 왜 그런 플레이를 했는지 짐작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가벼운 핀잔으로 끝났어야 할 대화가 점점 격해졌다. 녀석이 어떤 서운함과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건지 이해할 수 없는건 아니었지만 그런 감정들을 코트 위로 가지고 올라왔다는 게 참을 수 없었다. 평소의 키요시라면 아무리 서운한 점이 있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시합을 끌어갈 녀석은 아니었다. 정확하게 코트 전체를 보고 가장 필요한 곳으로 공을 돌려줄 터였다. 분명 그랬는데.
“너에겐 연습이 그렇게 쉽냐?”
모두가 전력을 다해 열심을 쏟아 붓는 이 코트가, 함께 정상으로 올라가자고 다짐했던 약속들이, 그깟 사소한 감정에 묻혀버릴 정도의 것 밖에 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이 녀석을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키요시에게서 되돌아온 대답은 야속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 쉽다.”
“뭐라고?”
“쉽다고. 너무 쉬워서, 아주 아주 쉬워서! 네가 아무렇지 않게 빠져버려도 상관없는 한 번의 연습에 난 내 고장 난 무릎을 걸었어! 됐어!?”
당장 멱살이라도 잡아 올릴 것 같던 휴가의 동작이 멈춰버린 이유는 달리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래. 굳이 집어보자면 키요시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분노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 그런 말을 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입안에서 맴도는 언어들을 닫아버리며 휴가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그시 눌러 담은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더 이상 이 앞에 있다가는 꼭지가 돌아버려서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눈앞에 선 저 바보를 지탱한 무릎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몇 번이고 지탱해주었다. 몇 번이고 구원해주었다. 세이린을. 이 오합지졸 농구부를. 그리고 나를. 완전히 나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남아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엉켜 어떻게든 소중히 하고 싶었다. 더 이상 다치지 않고 상하지 않도록 애써줄 요량이었다. 그런데 고장났다니? 고장 난 무릎이라니? 함께 정상에 오르자던 약속은 이미 녀석의 마음 한 켠에선 포기되어진 게 아닐까. 그런 불안감이 스치고 지나간 순간, 이미 휴가의 심장에 질러진 도화선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불길이 되어 있었다.
“그래. 어디 네 마음대로 해 봐.”
휴가는 돌아섰다.
“하고싶은대로 해버리라고!”
체육관으로 돌아와 쾅 소리 나게 문이 닫힐 때까지, 그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vol 4. 키요시
주먹을 움켜쥐었다. 멀어져가는 휴가의 등을 보면서도 붙잡을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달려가 등을 두드리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하지만 정말 원하는 만큼, 정말 원하지 않았다. 이해해주길 바랐다. 설명해주길 바랐다. 네가 착각한 것이라고 다그쳐주길 바랐다. 붙잡아 주길 바랐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닌데. 이런 식으로 상처를 주고 싶었던 게 아닌데. 쓰게 웃었다. 심장이 죄여올 듯 아팠다. 휴가. 이름이 낮게 새어나왔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듣지 못했다. 휴가. 좀 더 크게 불러보지만 마찬가지였다. 소중한 사람인데. 정말로 소중하게 아껴주고 싶은 사람인데.
그러나 휴가에게는 좀 다른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바라보는 시선과 서로를 느끼는 감정이 반드시 상호간에 동일한 무게를 지닌 것이라고는 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나자 심장이 무거웠다. 쿵쾅대는 움직임들이 그대로 전해와 타들어가는 듯 고통스러웠다. 휴가의 두 손이 옭아매고 들어와 쥐어 짜는듯한 감각이었다.
나는 네가 정말 싫다, 키요시. 아무리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으르렁대듯 달려들어 삿대질을 한다해도, 그것이 진심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단지 휴가는 진심을 표현하는 데에 서투른 사람이어서 직구를 던지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가 내던졌던 말의 의미 그대로만은 아닐 거라고. 참 소중하기에 아껴주고 싶었던 이 마음은 동일할거라고 생각해버렸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쉽게 간과해 버린 채. 바보같이. 정말, 바보 같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간신히 질문은 떠올랐지만 해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회한과 서운함이 한데 어우러져 바닥을 뒹굴었다. 쉽게 성을 내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런 감정을 대처하는 데는 서툴렀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어도, 어떻게 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키요시는 발길을 돌렸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연습을 버려둔 채 체육관에서 벗어나 집으로 향했다.
아아. 정말 최악이야.
vol 5. 휴가
키요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속절없는 시간만 흘렀다. 이런 식으로 싸우고 이런 식으로 헤어진 것이 처음이라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뜬 눈으로 밤을 새다가 집어삼킬 듯 떠오른 햇살의 성화에 못 이겨 집을 나섰다. 학교에서 마주치면 뭐라고 해야 하지. 쉬는 시간에 녀석의 교실이라도 찾아가봐야 하나.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메웠다. 간신히 생각의 꼬리를 돌려 해야 할 일을 체크한다거나 오늘 할 연습에 대해 짠다거나 해보기도 했지만 어떤 생각을 하든 맨 마지막에는 키요시에게로 이어졌다. 녀석이 없었던 1년의 공백이 무색하리만큼 이제 와서 키요시가 없는 포지션을, 키요시가 없는 연습을 상상하기란 힘들었다.
철심 주제에 그렇게 쉽게 무너지다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코가 뒤에서 밀고 휴가가 앞에서 당기도록 이 농구부를 만든 것은 그 녀석이었다. 그렇다면 좀 더 자신의 존재에 책임을 가지고 정 가운데에서 세이린을 받쳐야 할 것 아닌가. 누구보다 단단해야 할 기둥이 이런 식으로 발을 빼버린 것에는 여지없이 화가 솟구쳤다. 그러다가도 결국,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러니저러니 몰아붙이고 괜한 화풀이를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키요시 텟페이가 화를 낸다는 것은 어찌됐건 간에 희귀한 경험인지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아니, 희귀한 경험이라기보다는 거의 처음인 듯 했다. 애초 이성과는 동떨어져 있는 녀석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감정에 휘말려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런 식의 싸움은 정말이지 익숙하지가 않았다. 화를 내는 쪽은 자기 자신, 그리고 그걸 받아 넘기며 웃는 쪽이 녀석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다시 생각하니 또 열이 오른다. 그깟 연습 한 번 빠진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아니, 대수기는 하지. 대수기는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건 다…….
“휴가…?”
낯익은 목소리를 먼저 인지한 것이 몸이었는지 머리였는지 확인할 도리 없이 걸음이 멈췄다. 내리깐 시선이 닿은 곳에 커다란 발이 서있다. 아아.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휴가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들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키요시의 얼굴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왠지 이 녀석의 얼굴,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어제도 그제도 매일같이 본 얼굴인데도 어쩐지 지나치게 오래 된 것 같은. 아니, 잠깐.
“키요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뭐라고 다그칠 새도, 말릴 새도 없이 터져버린 얼룩에 모든 시간이 정지해버린다. 툭, 하고 떨어지는 아련한 느낌은 녀석의 웃음 속에만 들어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눈가에서 넘쳐흐른 줄기가 볼을 타고 턱 끝까지 흘러내려와 툭, 하고 땅으로 떨궈졌다.
“어어….?”
스스로도 당황했는지 눈가로 손을 가져가더니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어쩔 줄을 모른다. 줄줄히 젖어드는 눈동자가 물기를 가득 담아 어른거렸다. 그 맑은 표정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아, 그래. 아무 것도 상관없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휴가는 키요시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리고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vol 6. 키요시
한참을 달리다가 멈춘 곳이 어디였는지, 앞서 달리던 휴가의 등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휴가의 손이 닿은 손목이 무척 뜨거웠다는 것과, 뿌옇게 흐려진 채 돌아오지 않는 시야 너머에서 머리를 긁적이는 그의 표정이 사랑스러웠다는 것 밖에는. 터져버린 눈물과 함께 자신 안에 있던 무엇이 터져 나온 것인지 키요시는 알지 못했다. 그저 한 방울씩 떨어져 흐를 때마다 쌓이고 맺혔던 것들이 하나씩 풀어진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니까……, 미안하다.”
휴가가 한참이나 뜸을 들인 후에 한다는 말이 의외였다. 연습을 빠진 것도 미안하고 심한 소리를 한 것도 미안하고 하는 식으로 더듬더듬 얘기하는 그의 목소리가 단 번에 인지 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런 식으로 화를 내고 사라져버린 휴가가, 스스로 끊어버린 끈을 들고 와 자신의 손에 쥐어주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쁘고, 또한 너무나도 슬펐다.
“나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어, 휴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물기 섞인 말을 간신히 꺼냈을 때 휴가는 그저 그것을 덤덤히 받아들여 주었다. 토를 달지도, 다그치지도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눈을 맞춰온다. 결국 서운했던 것은 휴가에게가 아니었다. 그런 제멋대로의 심한 소리를 터트리는 순간에 깨달았던 것 같다. 자신은 단지 휴가와 함께 할 수 없었던 그 한 번의 연습이 아쉬워서, 미치도록 화가 날 만큼 너무나 아쉬워서, 그래서 괜한 화풀이를 휴가에게 했을 뿐이었다. 이렇게나 하루가 소중한데. 이렇게나 하루가 가는 것이 불안한데. 그 불안함 속에 휴가가 없다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토록이나 심장이 아팠던 것이다. 닳을 대로 닳아버린 이 무릎보다도 더, 아팠던 것이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며 바라다 본 휴가의 눈동자는 마치 그것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 키요시는 또 다시 눈물을 터트렸다.
“휴가.”
“응.”
“…휴가.”
“그래.”
“휴가…….”
세 번째 이름을 불렀을 때, 휴가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그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한 손을 올려 키요시의 눈가에 맺힌 것을 닦아내곤 두어번 어깨를 다독인다.
미안해-.
삼켜질 듯 속삭인 키요시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피식 하고 소리를 내며 멍청아- 라고 말하는 휴가의 미소는 정말이지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썩어가던 뿌리는 세상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심장을 죄여오던 질척한 감정도 더 이상은 없었다. 그를 살아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키요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휴가. 자신을 인도하는 따스한 태양.
키요시는 흩날리는 아침 햇살을 한 가득 담은 젖은 얼굴로, 휴가의 아름다운 미소에 화답하듯 웃음 지었다.
안녕하세요, 비도입니다. 저는 지금 달리는 차안에서 후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있으니 이 배포본이 나오기는 한 모양이군요(눈물). 사실 저는 비도님이 아니라 같은 부스의 Tat입니다. 운전 중인 비도님을 대신해 대리후기를 쓰고 있습니다. 받아쓰기중이에요. 비도님이 말합니다. 후기가 개그라고.
각설하고, 원래 모든 연성러들이 자기만족을 위해서 책을 쓰지만 이 책은 정말 자기만족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왜냐하면, 이 배포본은 사실 작년 대선 때 ‘투표율이 74%가 넘으면 기분이 좋을 테니까 기분 좋은 나를 위해 목일 배포본을 내자!’라고 저 자신에게 공략했던 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 약속을 지켰어요. 정말 장하다 김비도.
작업을 하면서 다른 원고 마감을 치느라 힘이 들긴 했습니다. 몇 번이나 하지 말까 싶기도 했지만 농구 첫 책이 목일이 아닌 것에 대한 저의 분노를 여기에 쏟아 붓고 싶었던 마음도 없다고 할 수는 없네요. 하핫. 아참,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글에서 휴가가 연습을 빠진 이유는 사실 쵸콜렛 때문이었어요. 그 날 마지막 가사시간에 키요시를 생각하며 쵸콜렛 만들기 실습을 하던 휴가는, 잘 되지 않자 어떻게든 완성을 시켜 키요시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연습시간이 지나는 줄도 모르고 쵸콜렛을 만들........었다는 것은 저의 망상입니다. 죄송합니다. 농담이에요.
이 각박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목일목일을 외쳐주시는 모든 목일러분들에게 이 배포본을 바칩니다. 목일 많이 사랑해주세요. 이상 비도였습니다. 비도님이 저 멀미 하는지 걱정해주시는데 다행히 저는 멀미를 하지 않습니다. Tat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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