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파란 이유(브레이크조) 글상자/Inazma 112013. 9. 10. 22:33
# 파파게나님께 선물로 드렸던 고엔지 중심 브레이크조 이야기
# 키도 중심 브레이크조는 꽤 많이 써본 것 같은데 고엔지 중심 브레이크조는 처음이라 어려웠던!!
"고엔지, 고엔지."
장난기 섞인 천진난만한 속삭임에 나는 머릿 속에서 풀어가던 계산을 멈췄다.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자 엔도가 싱글벙글 웃으며 창문너머 밖을 가리켰다.
"........?"
"하늘은 왜 저렇게 파랄까?"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하는 엔도는 제법 진지하다.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뭐라고, 엔도?"
"어떻게하면 저렇게 푸를수 있는거지? 신기하지 않아?"
나는 어이가 없어 무슨 말이든 대답하려 입을 열었지만, 우리 둘의 대화 사이를 치고 들어온 것은 다름아닌 키도의 목소리였다.
"하늘이 파란건 태양에서부터 오는 빛 중 가시광선이라는 빛의 영역이 지구의 대기층을 산란시키기는 것인데 파장이 짧은 보라색과 파란색이 레일라이 산란때문에 영향을 받아 우리가 보는 하늘이 파란색으로 보이는 것......"
나는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키도쪽을 돌아보았다. 샤프를 쥐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으로 보아 정말로 하늘이 파란 원리를 설명해주려는 건 아닌 것 같고. 비슷한 느낌을 감지했는지 그 ‘파란 하늘’을 감상하시던 엔도는 황급히 방 안으로 시선을 옮겨왔다.
"......이라는거다!!! 그러니까 계속 한 눈 팔지 말고 공부 좀 햇, 엔도!!!!"
"알았어, 알았어. 하하! 한다니까? 지금 공부하고있어, 키도."
"고엔지! 너도 엔도가 말거는 대로 다 받아주지 말고 그냥 무시하란 말이다!!"
한번 집중하기 시작하면 다음번 밥먹을 때 까지 꼬박 책상에 앉아있어야만 한다던 키도 유우토는 핀잔아닌 핀잔을 주며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연신 쿡쿡 웃음을 흘렸고 그런 나와 눈이 마주친 엔도마저 아예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우리 둘을 향한 또 한번의 역정. 키도는 공부하던 책상을 탕 치며 아예 본격적인 설교를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도 잔소리가 그치지않자, 그제야 엔도는 싫은 표정을 지으며 책상 위에 머리를 묻어버렸다. 그런 일대의 혼란 속에서 나의 시선이 움직였다.
작은 방 한칸. 방 구석에 놓인 창문하나. 그 너머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나는 엔도의 물음을 가만히 되내이며 나지막히 웃음지었다.
"그러게. 저 하늘은 왜 그토록 파란걸까?"
하늘이 파란 이유
- 파파게나님께 드립니다. (브레이크조) -
by. Bido Enhuki.
그라운드를 밟는 발자국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았다. 그 위를 구르는 축구공의 소리가 좋았다. 나는 발치에 잡아둔 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앞으로 전진했다. 다가오는 수비수를 제치고 몸을 돌려 공을 지켜냈다. 발끝을 타고 움직이는 공이 삽시간에 상대를 제압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의문은 없었다. 기회는 언제든지 오기 마련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비어버린 골길을 놓치지 않았다. 내 발등을 맞고 강하게 차올려진 공은 그대로 하늘 위로 치솟았고, 갑작스러운 방향전환과 함께 골네트를 흔들었다.
"골인이다, 골인!! 봤어? 여전히 멋지다, 고엔지!"
"역시 고엔지군."
나는 걸음을 멈췄다. 설마 지금 환청을 듣는 것은 아닐테고.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진원지는 언제라도 익숙한 이들이었다.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모르긴 몰라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벙쪄버린 나의 표정은 상기되어있었을 것이다.
"키도! 엔도! 어떻게 된거야? 여긴 어쩐 일이야."
"어쩐일은 무슨 어쩐일이야! 보고싶어서 찾아왔지. 그동안 잘 지냈어, 고엔지?"
엔도가 머리 뒤로 팔짱을 올린 채 싱글벙글한 얼굴로 소리쳤다. 고등학교도 졸업하는 마당에 녀석의 얼굴에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남아있다. 나는 즐거운 웃음을 터트렸다. 벤치의 수건을 하나 집어들고 거리낌 없이 옛 동료들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그러고보니 두 녀석을 만나지 못한지 꽤 오랜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연습에 몰두한다드니 국가대표라 바쁘다느니 하는 핑계로 두 사람에게 소홀했던 게 사실이었다. 결국 이런 곳까지 직접 찾아오게 만든건가. 나는 미안한 웃음을 흘렸다.
"나야 늘 같다. 연습에 바쁘지. 너희들은 잘 지냈나? 어떻게 지내는거야."
"그게 말이야 사실은 고엔지....."
무슨 일인지 엔도가 말끝을 흐렸다. 머리까지 긁적이는 꼴이 심상치 않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 나는 의아한 표정을 흘렸다. 엔도가 잠시 쭈뼛쭈뼛하며 키도의 눈치를 보는데 뜬금없이 키도쪽에서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어쩐지 아련함이 가득 베인 당당함이었다.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키도의 손등 위를 응시했다.
"........?"
"고엔지. 나 삼일 뒤에 이탈리아로 가게 됐다.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게 됐어."
"........뭐?"
이탈리아 리그라면..... 피디오가 있다던. 아니 그것보다도 이렇게 갑자기? 나는 벙찐 얼굴로 키도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우스웠는지 키도가 웃음을 터트렸다. 푸른 하늘 아래, 키도 유우토의 기분 좋은 웃음이 울려나왔다. 그는 얼빠진 채 얼어버린 나를 향해 타박아닌 타박을 내던졌다.
"아까부터 손내밀고 있었다, 고엔지. 악수 안해줄거야? 한동안 못볼텐데?"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는 채 납득되지 못한 마음으로 키도의 손을 맞잡았다. 뜨겁다. 그리 더운 날도 아니건만 손바닥을 타고 전해져오는 키도의 온기가 뜨거웠다. 뜨거움 아래 펼쳐지는 고요함. 무슨 말을 해야할지,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국땅으로 보내야만 하는건지 혼란스러웠다. 서로에게 맞물린 두 손은 한참동안이나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갑자기는 아니야."
"갑자기가 아니라고?"
"정해진 건 꽤 오래전이었는데.... 말을 못했다. 네겐 한 번 만나면 말해야지 했는데 타이밍이 좀 좋지 않았어. 넌 연습으로 계속 바빴고, 그렇다고 문자로 하기엔 너무 큰 이야기고. 만나서 말하려고 애쓰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니. 당황스러움이 솟았다. 정작 미안한건 나인데. 사실 평소라고 그리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도 서로 다르고,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후엔 학교에도 잘 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과 먼 이국땅으로 동료를 보내야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말 앞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뭐, 국제경기도 많이 있을테니 어쩌다 한두번은 그라운드 위에서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정 아쉽거든 이탈리아로 놀러오라고, 고엔지."
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하늘은 푸르고, 여전히 이들은 웃고있는데, 이상하게 나 자신은 웃을 수가 없었다.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 해답은 키도가 던져준 말 안에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단지 눈을 마주친 것 만으로 그 녀석은 내 마음을 읽어낸 것이다.
아쉬웠다.
이 푸르른 하늘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아쉬웠다. 아쉽고, 아쉬워서, 나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아쉽다는 말을 꺼내면 그 감정이 실제가 되어 영영히 잃어버리게 될까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삼일 뒤. 키도는 이탈리아 행 비행기 위에 올랐다. 비행기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맑은 하늘을 가르며 날았다. 내 마음 속에 묻어둔 아쉬움을 부정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비행이었다.
내가 그를 다시 만난건 그로부터 삼년이나 흐른 뒤였다.
# # #
[잠시 후 이 항공기는 이탈리아 피사 국제공항에 도착합니다. 안전을 위하여 안전벨트를 착용해주시고......]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에 눈을 떴다. 사람들은 부산스럽게 짐을 정리하며 착륙준비를 시작했다. 내게 딱히 챙길 것은 없었다. 어차피 이탈리아에 오래 머물 생각도 아니었다. 그저 잠깐, 인사를 하러 온 것 뿐이니까. 곁에 앉아있던 엔도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나는 그를 마주보며 웃음지었고, 엔도 역시 별다른 말 없이 미소를 흘렸다. 잠시 후 비행기는 공항에 내려섰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서던 순간의 철렁이는 느낌이 내가 이탈리아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간단한 짐을 찾고, 입국심사를 거쳤다. 엔도와 나는 거리로 나섰다. 확실히 공기는 좀 다른가. 엔도는 눈앞에 펼쳐지는 이색적인 느낌에 전율이 이는 듯 연신 감탄을 뱉어냈다. 하지만 그런 풍경들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땅에 내려서는 순간부터. 이 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아니, 이곳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는 그 순간부터. 내게 존재하는 모든 촉각은 단 한가지만을 향하고 있다.
"고엔지! 우선은 키도부터 만나러 가볼까?"
"아아. 당일치기인데 여기 온 목적부터 해결해야지."
"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루가 뭐람~? 기왕 마음먹고 놀러온건데 적어도 이틀은 있어야지."
아직도 그 얘긴가. 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터덜터덜 걸어가는 엔도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언제 저 녀석이 저렇게 키가 컸더라. 라이몬중에 있을때만해도 나보다 작던 엔도였는데. 지금은 글쎄. 내가 더 클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때로부터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루하루가 더디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지나고보니 시간을 종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그 지진한 세월들 속에서 저 녀석들은 늘 함께 있어주었다. 자주 만나지 못했어도, 함께, 있어주었다. 함께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주었다. 그런 너희들은..... 또 다른 세월이 흐르고 나면 나를 원망하게 될까.
"고엔지! 뭐해! 빨리 가자고!"
엔도가 등을 돌려 나를 불렀다. 나는 대답없이 걸음을 옮겼다.
# # #
키도의 놀란 표정은 아마 3년전, 내가 국가대표팀 연습장 안에서 두 사람을 만났을 때의 표정과 같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탈리아 한복판. 도저히 만날 수도 그려볼 수도 없는 장소에서 우리는 그를 다시 만났다. 나와 엔도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키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단어를 만들지도 못했다.
"어, 어떻게... 뭐, 뭐가 어떻게 된.... 고엔지? 엔도?"
"하하하하! 그러네! 정말 키도가 깜짝 놀랐어, 고엔지!"
"아아. 천하의 키도 유우토가 이렇게도 무너지는군."
나는 놀리듯 말했다. 엔도와 함께 터트린 웃음이 녀석의 마음을 녹였는지, 얼빠진 채 당황하던 키도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상황판단력이 빠른 녀석이다. 자신에게 처한 갑작스러운 상황을 모두 빠르게 해석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라운드 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 녀석과 함께 서면 공이 두렵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어떻게 된거냐, 연락도 없이. 미리 연락이라도 해줬으면 뭔가 준비라도 해놓지."
"난 연락하고 가자고 했는데 말이야, 고엔지 이 녀석이 깜짝 놀래켜줘야 한다면서 말이지. 그래도 다행이네! 키도가 여기 있어서."
".....그랬다가 날 만나지 못했으면 어쩌려고 했어."
키도는 난감한 웃음으로 핀잔을 건냈다. 그래.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마음 한 켠에선 그것을 바랬는지도 몰랐다. 만나지 못했다면 그저 그 뿐. 너와 나의 운명으로 여기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그 녀석은 있었고, 나는 녀석을 만났다. 나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 녀석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고글 너머에 있을. 하지만 눈은 보이지 않았다.
".......고엔지?"
키도의 입에서 의아하다는 듯 내 이름이 흘러나왔을 때, 나는 그 녀석에 대한 시선을 거두었다. 눈을 보면 알 수 있다는건 같은 그라운드 안에서는 유리한 일이지만, 말하고 싶지 않은 단어을 가지고 있을 때는 도움이 되질 못했다. 게다가 계속해서 녀석을 바라보고 있다가는 한 번 결심한 모든 것을 무로 되돌려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그 녀석의 눈을 응시할 수가 없었다. 녀석이 고글을 즐겨쓴다는 것이 난생 처음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글없이 보는 키도의 적안은 간간히 무서울 때가 있다. 지긋이 응시하는 홍안에 압도되어 마치 그 앞에 발가벗고 선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람을 사로잡는 단 한번의 시선. 지금의 난 그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냥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온거다. 통화야 여러번 했지만 얼굴은 본 지가 너무 오래됐으니까."
"단지 그것뿐이야?"
"........."
키도가 진지한 얼굴로 물어왔다.
"정말로? 믿어도 되는거냐?"
"......그래. 그것뿐이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웃음을 띄우며 대꾸했다. 여전히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는 미묘한 찌푸림. 하지만 키도는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는 녀석이었다. 그는 채 납득하지 못한 얼굴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머지 않은 미래에 너는 틀림없이, 내게 더 캐묻지 않은 오늘일을 후회하고 자책할테지만. 하지만 그런 너를 알더라도, 나는 말할 수 없어.
"좋아. 그렇다면 믿지."
"그보다, 키도! 오늘 연습 잠깐 빠질 수는 없는거야? 우리 여기 구경좀 시켜달라고!"
엔도가 끼어들었다.
"아니, 근데 구경도 좋지만 이탈리아의 그라운드를 밟아볼 수는 없을까? 축구, 같이 하면 안돼?"
"하하! 여기서도 관광보단 축구인거야? 정말이지 쌐카바카인걸. 게다가 운까지 좋군, 엔도? 다행히 지금은 자유연습시간이라 얼마든지 그라운드를 활용할 수가 있다. 이쪽으로와! 이탈리아의 필드를 느끼게 해주지."
발치에 놓여있던 축구공을 가볍게 튕겨올린 키도는, 두 손으로 공을 받아 즐거운 듯 엔도를 향해 던졌다. 엔도가 가슴으로 공을 캐치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도가 리드했고, 엔도가 그 뒤를 따랐다. 넓게 펼쳐진 잔디구장을 따라 주거니 받거니 공을찼다. 나는 그들이 한참동안 멀어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잔디 위로 구르는 작은 공이 키도와 엔도의 허공안에서 진명나게 춤을 췄다. 햇살이 잔잔하게 내려앉았다. 즐거운듯 웃음을 터트리는 그 녀석들의 얼굴 위로, 햇살은 손을 뻗었다. 온기가 닿았을 것이다. 땀방울이 흘렀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 온기를 간직할 것이다. 그래. 너희들은 같은 자리에, 변함없는 장소에, 있어주겠지.
하늘이 푸르렀다.
키도와 엔도는 푸른 하늘이 펼쳐진 푸른 그라운드 위에 서서, 크게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
"고엔지ㅡ! 너도 와라!"
"같이 축구하자!"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아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 # #
"아노 오토코....."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돔을 타고, 목소리는 고요하게 울려퍼졌다. 펼쳐진 화면 위에, 그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의 앞에는, 또 다른 그가 있었다. 단순히 라이몬의 연승을 막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내 안에 가장 크게 비틀어진 것이 무언인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국 중으로 가야겠다."
"........예?"
당황한 표정의 사람들을 제치고, 나는 거리낌없이 걸어 방을 빠져나왔다. 허겁지겁 뒤를 따르는 그들의 발길이 느껴졌다. 나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낱 예선전에 불과한 싸움에 '성제'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도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없는데, 그들이 나를 이해할 리 없었다. 하지만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제국중 시합장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소리소문없이 올랐다. 초반부터 격렬하게 펼쳐지는 시합때문에 내게 눈길을 두는 사람들은 없었다. 까마득하게 펼쳐진 그라운드. 그리고 그라운드 밖 벤치에는 그 두 사람이 있었다. 냉정한 눈길과 실수없는 판단으로 필드를 지배하는 한 남자와,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필드를 달궈내는 또 다른 남자. 그러나 조작된 운명의 장난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이기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것은 아무리 두 사람이 지난날 서로에게 소중했던 동료였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과연 예상대로 시합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그 곳에 서서 영혼을 부딪치는 두 남자. 엔도 마모루와 키도 유우토. 나는 오랫동안 두 사람을 응시했다. 필드가 밀리는 순간에도 동요하지 않고, 꿋꿋하게 같은 자리에 앉아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시가 그리 자주 떨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에 있었고, 그들의 눈은 그라운드를 보고있었고, 그들의 마음은 그라운드 위를 달리고 있었다. 묵묵한 시선아래 펼쳐지는 화려한 전쟁. 직접 몸을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2년전 그때와 다르지 않은 자리에, 같은 길 위에, 서있다. 내가 부숴뜨리고 파괴해야만 하는 길 위에, 그 녀석들은 꿋꿋히 서있었다. 아름다울 정도로 눈이 부시게.
"엔도."
이름을 불러보았다.
"......키도."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시선을 옮겼다. 고개를 들어 제국 중의 천장을 응시했다. 아무 것도 없는 밋밋함을 생각했었는데, 나는 의외의 풍경과 맞닥드리고 말았다. 하늘. 무척이나 푸르른, 하늘. 어째서 학교 그라운드 위에 하늘을 뚫어놓았을까. 카게야마가 있던 시절 이 그라운드의 천장은 분명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철골구조였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 하늘이 보인다. 어째서 천장을 없애는 대규모 공사를 거쳐서까지 여기에 하늘을 뚫어놓은 것일까. 키도. 넌 아무런 의미도 없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잖아? 그가 의도한 것은 뭐였을까. 이 자리에 서있어도 그 푸른 하늘은 또렷하게 보였다.
ㅡ 고엔지, 고엔지!
하지만 어째서일까. 엔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ㅡ 하늘은 왜 저렇게 파랄까?
십년 전 그 어느 날엔가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질문. 아무런 해답도 없었던 질문. 하지만 말이다, 엔도. 사실 우리들은 모르지 않았잖아? 왜 하늘이 그토록이나 푸르렀는지. 어째서 그렇게나 아름다울 수 밖에 없었는지를 말이다. 우리 세 사람 모두 알고 있었어.
그 파란 하늘 아래,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걸.
우리가 함께 있던 하늘은 언제나 푸르렀다는 걸. 그 하늘 아래에서 함께ㅡ, 공을 차고 싶었다는걸. 우리 셋이 함께 바라본 하늘이었기에, 언제나 그 어느 곳에서도 아름다울 수 밖에 없었다는 걸.... 사실은 모르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이제는 달라졌다. 엔도. 그리고 키도. 너희들이 바라보는 하늘은, 너희들이 눈에 담는 하늘은 아직도 푸르른가? 나의 하늘은 그렇지 않아. 나의 하늘은 이제.....
죽어버렸다.
게임 스코어 3:2
예상했던 결과를 눈에 담으며, 나는 말없이 제국중을 빠져나왔다.
# # #
그리고 얼마 뒤, 모든 소음을 묻어버린 감정 없는 공간 안에, 녀석은 모습을 드러냈다.
"성제님을 만나고 싶다는 자가 찾아왔습니다."
"그게 누군가."
"라이몬 중의 엔도 마모루 감독입니다."
엔도, 마모루.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한 걸음을 걸어 내 앞에 설 것이다. 똑바로 눈을 마주하며 응시하는 녀석의 눈 안에는 그와 닮은 또 한사람, 적안의 사무침을 가진 키도가 함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여전히 함께 있어 내 눈을 자신들의 그릇안에 담을 것이다. 침묵이 흐를 것이다.
해답없는 질문을 먼저 끌어안은 것은 엔도였었고, 엔도의 질문에 답을 끌어주는 것은 키도였지만, 그 해답을 찾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엔도는 말했다.
ㅡ 고엔지, 고엔지! 하늘은 왜 저렇게 파랄까?
대답을 원했다. 하지만 방 안에는 아무런 메아리도 울리지 않았고, 어떤 푸르름도 찾아들지 않았다. 작은 방 한칸. 방 구석에 놓인 창문하나. 그 너머로 파란 하늘이 보였었다. 나는 엔도의 물음을 가만히 되내이며 나지막히 웃음지었다.
ㅡ 그러게, 저 하늘은 왜 그토록 파란걸까?
나는 대답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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