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고 28화 기반 조각글 (토비키도) 글상자/Inazma 112013. 9. 10. 22:47
# 이나Go 28화를 보고 불타올라 연성한 조각글.. 토비타카x키도 입니다
# 토비타카 좋지 않나여 토비타카... 으 10년전 토비타카는 그냥 귀여운 애였는데
어느덧 듬직한 사내가 되었구나 ㅜ^ㅜ 이 누나는 기쁘단다
키도는 야근도 많이하고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서 일하는 때가 많을 테니까...
그러니까 가능하면 토비타카가 자주 찾아가서 말동무도 되어주고 밥도 챙겨주고 하면 좋겠어요
키도야 밥은 먹고 다니니..? 밥 챙겨먹고 다녀...
우리들이 세계 제일을 노리고 있었을 때, 나는 굉장한 사람들과 함께 필드에 서있는 것이 무척 불안했었다. 저 사람들을 따라갈 수 있을까. 이런 내가 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반복되기만 하는 고민들은 나 스스로를 점점 더 고립되게 만들었다. 앞서가는 사람들의 등은 너무나 멀고 너무나 눈이 부셔서, 내게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캡틴의 모습도, 고엔지상의 모습도, 그리고 그 사람. 키도상의 모습도.
모두가 눈이 부셨지만 특히 그 사람은 더했다. 필드 위를 훑는 날카로운 눈빛과 쉬지않고 휘날리던 붉은 망토. 우리 팀의 골대를 지키는 것은 캡틴이었고 득점을 얻는 것은 고엔지상이었지만, 우리 팀의 시합을 이끌어가는 것은 언제나 키도상이었다. 그가 머뭇거리면 팀 전체가 머뭇거리고 그가 역경을 뚫어내면 득점으로 이어졌다. 캡틴과 적으로 만나 같은 필드에 서기까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에 얼마나 많은 힘겨움이 있었는지 들을때마다 나는 더더욱 그를 동경해갔던 것 같다. 하지만 캡틴도, 그리고 키도상도. 달려가는 걸음걸음은 눈이 부셨다. 도저히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부시고 아름다워서 나는 차마 그들을 올곧게 바라볼 수가 없었다.
때문에 기묘한 우연이라고밖에는 정의할 수가 없었다. 키도상의 어깨가 그렇게나 작고 왜소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정말이지 기묘한 우연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그건 한국전이 끝난 직후, 언제나처럼 히비키 감독과의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축구공을 옆에 끼고 터덜터덜 걷는 내 발걸음이 어느샌가 북적이는 도로를 지나 라이라이켄 앞에 다다랐을 때 나는 그 사람을 발견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라고 딱히 가게를 들리려 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지나가는 길일 뿐이었고, 때문에 그 앞에 서서 간판 위를 돌려다보던 키도상과 마주친 건 우연한 한순간의 장면에 불과했다.
그는 무엇을 기억하는지 아니면 무엇을 추억하는지, 소리없는 눈빛으로 불꺼진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제법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그의 눈빛은 비록 고글에 가려 있었기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어쩐지 그가 하고싶은 말들을 수많이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내가 바로 옆까지 다가가도록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래서 나는 한참동안이나 그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토비타카?"
그가 나를 발견한 것은 바라보던 간판에서 눈을 떼고 몸을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나는 짧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마주보았다.
"언제부터 여기......"
"히비키 감독님을 만나러 오셨습니까?"
내가 간단히 묻자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침묵이 이어졌다. 이 이상 뭐라고 말해야 할지, 혹은 무엇을 더 물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는데 먹먹한 침묵이 어색했는지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히비키 감독님과 매일 연습을 하고 있다 했던가. 그래서 이 시간에 가게 문이 닫혀있는거로군."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짧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나의 짧은 대답만큼이나 짧은 웃음이 걸렸다. 잠시 바람이 스쳤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한 번 불꺼진 간판을 들여다보았다. 잠시 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부럽군."
잠시동안 그가 한 말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몇번이나 되짚으며 곰곰히 생각한 끝에 나는 뒤늦은 당황을 내비쳤다.
"......예?"
"엔도는 할아버지의 노트가 축구를 가르쳐준다. 그리고 넌 히비키 감독이 축구를 가르쳐주지. 하지만 나는......"
그가 말끝을 흐린다. 나는 대답없이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고글은 그의 진의를 알기 어려울만큼 얼굴을 단단히 가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의 표정에 묻어있는 나지막한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쓸쓸해하고 있었다. 무엇으로부터의 쓸쓸함인지 무엇으로부터의 아쉬움인지는 알지 못했으나 그는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 쓸쓸함은 평소 키도 유우토라는 존재가 쉽게 내비쳐주지 않는 종류의 것들이어서 나는 정말이지 의외의 감정들을 겪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처음으로ㅡ,
그의 어깨가 너무나 작고 왜소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물었다. 딱히 생각하고 던진 말은 아니었다. 그저 입 안에서 튀어나오는데로 그에게 질문했을 뿐이다.
".....필요한 겁니까? 의지할 곳이."
"음?"
그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놀란 표정을 짓고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고글 아래 눈빛이 놀라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데는 약했다. 워낙 말주변이 없는 나로서는 그에게 어떤 멋진 말을 해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그를 보낼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눈이부시던 존재가 이런 작은 아이였다는 사실이 실감나게 다가온 탓도 있었지만, 가지런히 떨구어진 채 잔뜩 움켜쥔 그의 두 주먹을 외면할 수 없던 탓도 있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축구ㅡ, 하시겠습니까?"
"......토비타카?"
"이런 형편없는 실력의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말입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캡틴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축구를 가르쳐 줄 수도 없고, 그가 원하는 그리움이 되어줄 수도 없고, 마음에 위로가 될 어떤 말들을 해 줄 수도 없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단지 같은 필드 위에서 그의 눈부신 공을 좇아가는 것 뿐이었으니까. 그는 잠시 쓴 웃음을 지으며 나를 응시했다. 그 웃음이 무슨 의미였는지 나는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는 웃었고, 그리고 내게 말했다.
"넌 이미 우리 팀의 훌륭한 수비수고, 내가 의지하는 동료다. 절대로 형편없지 않아. 도전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그렇다면 한 판 하시죠. 답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는 내가 동경하던 빛과 같은 그라운드 위에 섰다. 몇번이나 그의 공을 빼앗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나는 단 한번도 그의 발치에 머문 공을 건드릴 수 없었다. 움직이는 발길위에는 간간히 혼란함이 묻어있었고 간간히 어려운 고민들이 묻어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공을 건드리지 못했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 두 사람은 공을 좇아 달렸다. 터질것 같은 호흡이 밀려들어도 쉬지 않고 그라운드 위를 질주했다.
그는 즐거운 듯 웃었다. 나와 축구를 하는 내내, 내가 그의 발치를 향해 달려드는 시간동안에 줄곧, 그는 웃고있었다. 붉은 망토가 하늘을 휘날았다. 푸른 고글과 몇번이고 눈이 마주쳤다. 한 팀이 되어 등을 보고 있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필드 위에서 마주서니 그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의 눈빛, 그의 마음, 그의 생각이 조금씩 읽혀졌다. 비록 그의 공을 단 한번도 건드리지는 못했지만 나는 키도 유우토라는 존재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부신 존재. 그는 어느새 내 앞선 자리가 아니라 내 바로 옆 자리에서 달리고 있었다.
".....제게 더 많이ㅡ, 가르쳐주시겠습니까?"
흙먼지를 일으키던 발길이 멈추고 어느덧 필드 위로 석양이 내려앉았을 때, 나는 축구공을 사이에 두고 서서 그에게 말했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말로 전하는데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용기를 내어 다시 그에게 말했다.
"저는 줄곧 굉장한 사람들과 함께 필드위에 있는 것이 불안했습니다. 저런 사람들을 따라갈 수 있을까. 이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왜냐하면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앞선 사람들의 등이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요. ......너무나 눈이 부셔서."
".....지금의 난, 네게 있어서 앞서가는 자라는 말인가?"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였는데도 진심으로 반응해준다. 민망할 정도로 부끄러운 고백이었는데도 진지하게 들어준다. 그게 바로ㅡ, 키도 유우토. 내 눈 앞에 선, 그러나 같은 필드 위에 선 바로 이 사람의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짝 미소지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벌써 알고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알고있다니.... 무얼 말이지?"
나는 그와 나 사이에 있던 축구공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느리게 공을 들어올린다. 그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축구공 위로 옮겨왔다. 나는 웃으며 그에게 공을 내밀었다.
"축구ㅡ, 즐거우니까요."
그의 푸른 고글 안에서 당황함으로 놀란 적안이 석양을 받아 붉게 빛났다. 나는 얼떨떨하게 멈춰선 그의 두 손 위로 가만히 축구공을 건네주었다. 작은 두 손 위에 작은 축구공이 자리잡는다. 그리고 나는 말없이 돌아섰다. 그라면 이해하리라 믿었다. 누구보다 지혜롭고 누구보다 생각이 많고 누구보다도 모든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니까. 축구는 즐겁다. 물론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잘 하게 될 수도 있을테지만, 설령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축구는 즐거운 것이다. 같은 필드에서 달려주는 동료들이 있으니까. 옆에서 웃어주는 동료들이 있으니까 즐거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전하고 싶었던 마음은 그것이었다. 그리고 난 그 사람 역시 내가 전하려던 것을 정확히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천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는지 그는 두 손에 든 축구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나는 즐거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후회없이 돌아섰다. 하늘이 붉었다. 너무나 눈이 부셔 바라볼 수 없었던 그 무언가를 마주한 느낌이 들었다. 가슴이 후련해진다. 즐거웠다. 그래. 축구ㅡ, 참으로 즐거운 것이로구나. 진심으로 즐거운 웃음이 새어나왔다. 나는 웃으며 하천가를 빠져나왔다.
.
.
.
그리고 세월은 흘러 라이라이켄의 어느 저녁밤. 라이몬의 교복을 입은 세 명의 학생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학생들은 각자 라면 하나씩 주문한 뒤 제법 우울한 이야기를 나눴다.
ㅡ 키도 감독님의.....
.... 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라이몬인가. 나는 즐거운 웃음을 지으며 볶음밥 하나를 서비스로 내놓았다. 영문도 모른채 기뻐하던 아이들은 계속해서 연습의 어려움을 토로하다 가게를 나섰다. 캡틴이 라이몬의 감독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키도상이 라이몬의 코치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그리고 또다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캡틴 때문에 키도상이 감독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사람은 오늘도 여전히 수많은 생각속에 휩싸여 자신에게서 사라진 그리움을 되짚고 있을까. 10년전에는 필드 위에 있던 모두가 그 사람의 작은 어깨에 의지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었는데, 사실 따지고보면 반대로 그 사람이 우리들에게 더 깊이 의지하고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사실은 그 사람에게야 말로 그를 단단하게 붙들어줄 수 있는 의지점이 필요했던건 아닐까 그런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름대로 가장 자신있던 요리를 만들었다. 철가방에 조심스레 챙겨넣고, 식지 않도록 빠르게 달려 라이몬 중에 들어선다.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내게는 여전히 그의 등이 멀고, 그는 너무나 눈이 부시지만, 하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참견 한 그릇이 필요했었다는 걸 알고있기에. 그에게는 이런 참견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대답은 없었지만 나는 거침없는 웃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또 한 번, 그의 놀란 표정과 마주섰다.
".....토비타카?"
예상했던 반응이다. 나는 대답없이 그의 책상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철가방 안에서 준비해 온 음식을 꺼냈다. 그의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다시 한 번 그의 왜소함을 만났다. 그는 여전히 작고 그는 여전히 왜소하고 그는 여전히 홀로 앉아 고민에 잠겨있다.
나는 10년 전의 어느날과 같이 작게 미소지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참견 한 그릇, 배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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