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쿤(밤쿤)] 표식 - 프롤로그 글상자/└표식(연재중)2016. 8. 6. 23:31
* 밤쿤 (올레쿤) 중심의, 원작세계 기반 서바이벌 스토리입니다. 즐겁게 감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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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식 일러스트는 요찌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프롤로그 -
끝없이 헤매기만 했던 꿈의 세계는 언제나 선명했다. 남들처럼 뿌옇지도 않고, 흐리지도 않고, 마치 현실이 되기라도 하는 양 분명하게 살아있었다. 이제껏 알아 왔던 동료들이나 새로 만난 사람들은 이 현실 같은 꿈의 세계를 함께 유영했고,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탑을 올랐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며, 남겨둔 기억을 되새겨야 하는 지독한 악몽이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또 어느 순간에는 단숨에 깨어날 것 같은 지루한 시간들이었다.
그렇기에 오랜 헤어짐을 돌아 다시 눈앞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의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꿈인 것만 같다고 말해놓은 주제에 막상 그가 살아 돌아왔을 때는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드디어 공방전의 모든 싸움을 끝내고 셋이 함께 모여 곤한 잠을 자던 그 순간에도, 눈을 뜨면 다시 그가 사라지고 없을 것만 같았다. 그 불안감이 고통스럽고도 고요했다.
그러나 믿었다. 이제 셋의 사이에 다시는 헤어짐이 없을 거라고. 앞으로 탑을 오르는 모든 순간 속에 절대로 이별 같은 것은 없고, 그 악몽 같았던 시간으로 돌아가는 일도 없을 거라고 믿었다. 이름을 부르면 돌아봐주고 마주치면 웃어주는 그의 존재가 다시 사라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쿤!”
그 처절한 고통이 다시 현실이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쿤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눈을 떴다. 환한 불빛이 눈앞을 아른거린다. 흐릿하게 깜빡이는 눈동자 너머로 익숙한 형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가 어지럽게 쿤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신이 들어, 쿤!?”
“으…….”
그는 신음을 흘리며 시선을 들었다. 뿌옇기만 했던 그림자가 점점 제자리를 찾더니 이윽고 선명한 얼굴이 된다. 낯익은 사람이었다. 쿤은 가까스로 입술을 열었다.
“자왕난…?”
“깨어났구나! 드디어 깨어났어!”
“오오, 드디어!”
“괜찮으십니까?”
“뭐야? 도대체 뭐가…….”
그는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안전을 확인하는 대여섯 명의 얼굴들이 환하게 웃었다. 왕난을 제외하면 전부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대번에 경계태세를 보였지만 왕난은 익숙한 듯 그 무리 틈에 끼어있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 모두 같은 신세니까.”
같은 신세라고? 쿤은 왕난의 너머로 펼쳐진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장소였다. 에반켈의 층에서 밤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끝도 없이 넓은 공간이었지만, 온통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놓인 것이 없어 그 모양새를 가늠할 수 있었다. 창문은커녕 제대로 된 문 하나 보이지 않았다. 눈을 멀게 할 정도로 강한 불빛과 체념한듯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몇몇 사람들이 전부였다. 정면의 벽에는 커다랗게 ‘3’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설마, 갇힌 거냐?”
쿤은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왕난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밤이랑 악어는?”
쿤은 정신을 잃기 전까지 함께 있었던 두 사람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한가롭게 놀이기구나 타겠다고 유원지를 찾은 것이 문제였다. 공방전이 끝나고 밤과 재회하게 되어 월하익송이 관리하는 리조트에 머무르면서 평화로운 일상에 젖어버린 탓인지도 몰랐다. 이수의 팀도 시험을 치르기 위해 다음 층으로 떠났고 화련과 왕난의 몸도 회복되어 안정적인 나날들이 지속되던 중이었다. 아마 그 때문에 경계심을 풀어버린 것이겠지. 고작 공방전을 마친 지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소풍을 나섰다. 밤을 노리는 녀석들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어야 했다. 쿤은 가만히 고개를 젓는 왕난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적어도 여기에는 없어.”
“포켓은? 받지 않는 거냐?”
“아예 작동하지 않아. 내가 연락해봤지만 먹통이었어.”
“서로 대화는 통하는 걸 보니 통신기능만 마비 된 건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는 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이 설령 7년 만에 만난 오랜 친구의 바람이었다고 할지라도.위험이 도사리는 장소에 대책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간 것은 자신의 실수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신수의 집’에 들어간 것이 자신과 밤, 라크와 왕난 네 사람 뿐이라는 것이었다. 프린스나 미생처럼 어린 녀석들이 함께였다면 더욱 난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통신기능이 마비상태라면 위치추적 기능도 먹통이겠군. 구해지는 것을 기대하긴 힘들겠어. 란에게 연락이 닿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악어 자식, 리조트에서나 놀 것이지 밤한테 괜한 얘기는 꺼내가지고.”
“기억나? 그 ‘신수의 집’인가 뭔가 하는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연기 같은 게 나왔었지?”
“그래. 그냥 넓고 어두운 로비 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서 수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네 녀석이 제일 먼저 정신을 잃었지.”
쿤은 왕난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서로 의지할 마음 같은 건 없는 거냐. 왕난이 조금 퉁명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다가 이내 표정을 굳혔다.
“그래서 내가 정신을 잃은 뒤에는 어떻게 됐어? 더 기억나는 거 없어?”
“그 다음으로는 악어 녀석이 쓰러졌어. 그리고부터는 시야가 흐릿한데, 아마 밤도 비슷한 상태였던 것 같아. 거의 동시에 정신을 잃었을 거야.”
“그럼 우리 넷 다 마지막까지는 함께 있었다는 거네?”
“그래. 왜 우리 둘만 따로 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도 모두 같은 상황이래. 그 ‘신수의 집’에 들어갔다가 같은 연기를 마시고 쓰러진 것 같아.”
왕난은 계속해서 안심을 시키려는 듯 주변 사람들을 소개했지만 쿤은 의심을 풀지 않은 채 그들을 살폈다. 가만히 보니 몇몇 얼굴은 낯이 익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때 유원지에서 스쳐지나갔던 사람들이 맞는 듯했다. 독특한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은 분명 줄을 서러 가던 도중에 어깨를 부딪친 기억이 있었다. 그럼 ‘신수의 집’에 구경 왔던 사람들을 통째로 납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함께 있는 사람들이 너무 적었지만 그것 외의 가능성은 떠오르지 않았다. 밤은 무사한 걸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생각이 떨려왔다.
“그리고 이것 봐. 또 이상한 것이 있어.”
왕난은 쿤의 집중을 방해하며 난데없이 팔뚝을 걷어 올렸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또 뭐야?”
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지만 왕난이 보여주는 것은 그냥 무시하기에는 제법 중요한 의미가 있어보였다. 표식이었다. 왕난의 왼쪽 팔뚝에는 어떤 문양 같은 것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뱀처럼 또아리를 트고 있는 검은 문양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불길하게 느껴졌다. 왕난이 침을 묻혀 슥슥 문질렀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펜으로 대충 그린 건 아닌 것 같고 특수한 기술로 박아 넣은 듯해.”
“그게 뭔데?”
“그거야 나도 모르지. 하지만 사람들 몸에 하나씩은 다 있는 것 같아. 모양은 모두 다르지만 말이야.”
왕난의 말이 끝나자 너도 나도 표식이 있는 위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모양 뿐 아니라 표식이 있는 위치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사람은 이마에, 어떤 사람은 손등에, 어떤 사람은 옆구리에 문양을 가지고 있었다. 쿤은 자신의 팔뚝을 걷어보았지만 하얀 속살만이 드러날 뿐 보이는 것은 없었다. 얼굴이나 손등에도 없는 것 같고. 넥타이와 셔츠의 첫 번째 단추를 푸르고 카라를 잡아당겨 고개를 내리니 그제야 자신의 표식이 보였다. 쇄골을 따라 가슴께에 위치해있었다. 쿤은 셔츠의 단추를 채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을 잡아다가 이상한 문장이나 박아놓고 도대체 무슨 장난을 치려는 건지 모르겠군. 일단 여기에서 나가자. 문이 없다면 만들어보는 게 좋겠어.”
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를 만류했다. 쿤이 의문어린 표정으로 왕난을 바라보자 그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네가 똑똑한 건 알겠지만, 나도 그 생각에는 반대야.”
“반대라니, 왜?”
“보시다시피 저기.”
왕난은 체념한 표정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처음에는 너무 멀어 눈에 띄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벽면에 쓰러진 그림자가 있었다. 쿤이 눈으로 의문을 표하자 왕난이 어깨를 으쓱 올려보였다.
“넌 지금 막 깨어나서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너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지 않았겠어? 저 사람은 일어나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벽으로 달려들었어. 아마 부술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그대로 고압전류를 맞고 쓰러졌어. 아마 벽에 큰 충격을 가하면 발동하는 것 같아.”
“고압전류라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장난을 치는 것은 아닐 테고. 쿤은 이내 한숨을 흘렸다. 누가 벌인 짓인지는 몰라도 단단히 작정한 것이 틀림없었다. FUG의 짓일까? 이미 밤은 데려가 버리고 쓸모없는 사람들만 이곳에 가두어 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하기엔 라크마저 없어졌다는 사실에 의문이 떠올랐지만 가장 위협이 되는 적이라면 역시 그들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근데 저 꼬마는 누구야?”
쿤이 고갯짓으로 벽면을 가리켰다. 고압전류를 맞고 쓰러진 사람의 곁에 웬 어린 아이 하나가 앉아있었다. 란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좀 더 어려보이는 소년이었다. 하얀색에 가까운 회색의 머리가 복슬복슬하게 흔들리는 곱슬머리다. 머리색과 대비되는 보라빛 목도리를 칭칭 감은 그 소년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소리 없이 앉아있었다. 보통 이런 환경에 몰리게 되면 사람들은 의지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몰리게 마련이다. 쿤과 왕난의 곁에 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바로 좋은 예였다. 모두가 같은 상황이라는 동질감이 그들에게 커다란 위안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그 소년만은 쓰러진 사람의 곁에 웅크리고 앉아 한 번도 무리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저 죽은 사람하고 아는 사이였던 것 같아. 저 사람이 죽자마자 얼굴이 새파래져서는 넋을 놓더니 그 뒤로는 계속 저 자세야. 여기 사람들이 몇 번 가서 달래봤는데 꼼짝도 하지 않더라고. 충격이 어마어마했겠지. 탑을 같이 오르던 동료가 아니었을까?”
“…….”
쿤은 밤의 얼굴을 떠올렸다. 동료를 잃는 슬픔은 누군가가 달래준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각오도 없이 탑에 왔냐고 물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동료를 잃기 위해 탑에 들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밤을 찾아야 한다. 같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쿤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였다. 별안간 천장에서 거대한 종소리가 울렸다. 하얀 공간을 타고 끝까지 울려나가기 시작한 종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딩, 딩, 딩. 느리게 흘러간 소리의 반복은 정확히 12번째에 가서야 소음을 그쳤다. 그리고는 고막을 찢는 기계음이 들렸다. 쿤과 왕난은 자동적으로 귀를 막았다. 절로 기분이 나빠지는 불쾌감에 몸이 떨렸다.
“도대체 뭐하자는 짓거리야?”
쿤이 불만을 내뱉음과 동시에 소음은 그쳤다. 그리고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아. 장내에 계신 선별인원 여러분들, 안녕하신가? 인사드리지. 나는 이 게임에 여러분을 초대한 게임마스터, S 라고 한다.주변에 아직도 기절해있는 멍청한 녀석들이 있다면 부디 깨워주길 바란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이 게임에서 살아남지 못 할 테니까 말이야.]
“…지금 저 녀석이 뭐라는 거야?”
왕난이 퉁명스럽게 입을 열자 쿤이 쉿, 하고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여러분은 내가 준비한 게임에 초대받았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여러분의 몸에는 특정한 표식이 있을 것이다. 이 게임장에 있는 300명의 사람들 중 자신과 같은 표식을 지닌 자를 찾아서 죽이면 된다. 다시 말해 이곳에는 150쌍의 표식이 있고, 자신과 같은 표식을 지닌 자신의 ‘짝’을 찾아 제거하면 살아남을 수 있지.]
“뭐라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돼!”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쿤은 다시 손을 뻗어 그들의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300명이라고? 아무리 많게 잡아도 이 하얀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여섯 명이 전부다. 그런데 300명이라니 무슨 소리야? 빠르게 머리를 굴리면서도 흘러나오는 방송에서 귀를 떼지 않았다.
[아마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가 궁금하겠지? 우리는 일개 나부랭이들이 너도나도 랭커에 도전하는 현실을 바꾸고자 이 게임을 기획했다. 물론, 여러분이 바로 그 일개 나부랭이들이지. 요즘 들어 랭커의 자리에 도전하는 선별인원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D급, C급으로 올라가지 못한 E급의 패배자들이 자신의 주제도 모른 채 끊임없이 위를 향한 시험에 도전하고 있지. 위대하신 자하드와 그를 보좌하는 랭커의 자리에 개나 소나 덤벼드는 꼴을 방치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위대하신 자하드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셈이 아니겠나?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제안하는 바이다. 공정한 게임을 통해 너희가 계속 탑을 오를 자격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하도록 해라. 자신과 같은 표식을 지닌 자를 찾아 죽이고, 너희의 숫자를 150명으로 줄여라. 그렇게 하면 살려주도록 하지. 강한 자에게는 탑을 올라 랭커의 자리에 도전할 자격이 있으니까 말이야.]
정신 나간 소리였다. 쿤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람들은 금세 겁에 질리기 시작했고, 그 중에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녀석들도 있었다. 아마 이런 하얀 방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맨 첫 사람이 벽으로 돌진하자마자 죽어버리는 장면을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겁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했고, 방 안에 갇혀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절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먼저 눈을 뜬 사람일수록 그럴 것이다. 특히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하는 순간, 그 동안 가까스로 눌러왔던 불안감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위협이 되어버릴 것이다. 쿤은 입술을 깨물었다. 사태는 최악이었다.
[지금 시간은 오전 6시다. 제한 시간은 72시간, 다시 말해서 게임이 종료되는 것은 3일 뒤의 이 시간인 오전 6시다. 그때까지 자신의 짝을 찾아 죽이지 못하면 그 표식을 지닌 두 사람은 모두 죽는다. 6시간 마다 한 번씩 종을 울려 시간을 알려줄 것이다. 아무쪼록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이 따르길 빈다. 자하드에 영광을!]
온 몸의 전율을 담아 소리치는 음성은 진심 그 자체였다. 들은 적이 있었던 것도 같다. 탑의 어딘가에는 자하드에 대한 충성심이 너무 강해 사이코가 되어버린 단체도 있다고 했던가. 이건 거의 랭커를 숭배하는 랭커숭배자들에 가까운 것 같지만. 밤을 노린FUG의 수작이 아닌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하필 꼬여도 이런 녀석들에게 꼬여버린 자신의 운명이 한스러웠다. 탑을 오르기 시작한 뒤로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 녀석들의 헛소리에 얌전히 따라 줄 수도 없고?
그러나 곧이어 쿤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그는 아파오려는 머리를 붙들며 전방을 주시했다. 아무래도 이곳에 300명이 있다는 사실은 진실인 것 같았다. 건물이 웅웅대며 흔들렸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얀색이 전부인 줄 알았던 벽면에 균열이 지기 시작했다. 눈앞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쿤이 서있는 뒤쪽 벽면의 일부분이 무너져 내리더니 상행선과 하행선의 에스컬레이터가 모습을 드러냈고, 양쪽 벽의 균열을 뚫은 곳에는 각각 커다란 엘리베이터 두 대가 나타났다. 그 위쪽으로 드러난 표시에 의하면 제일 꼭대기 층은 50층. 쿤이 있는 곳은 3층이었다.
정면에 있던 글자는 층수를 나타내는 것이었나? 쿤이 눈앞으로 고개를 돌리자 정면의 벽에는 멀쩡한 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다음에는 문 위쪽으로, 그리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위쪽으로 거대한 하수구 같은 것이 출현했다. 사방에서 솟구친 하수구의 모습에 왕난이 입을 떡 벌렸다.
“어, 어이, 쿤…! 이거……!”
당황한 표정으로 쿤의 옷깃을 당겼으나 그는 대답해줄 여력이 없었다. 돈이 어지간히도 많은 집단인가보군. 쿤이 자조하는 웃음을 지으며 왕난의 손을 붙들고 뛰기 시작했다. 왕난은 그 행동의 의미를 단숨에 눈치 챌 수 있었다. 물소리였다. 그것도 거대하고 어마어마한 물소리다. 사방에 위치한 하수구에서부터 폭포수와 같은 소리를 터트리며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양과 빠르기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여서 물은 금세 발목까지 차오르는데, 이 방을 탈출할 수 있는 정면의 문까지는 아무리 달려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러면,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죽음과 가까워지는 공포를 타고 게임마스터 S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무척 다정하면서도 섬뜩하기 그지없는 죽음의 속삭임이었다. 쿤과 왕난은 깨달았다.
죽음으로 가는 72시간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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