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하쿠 >> 슈 느낌을 더 좋아하지만 슈 > 하쿠 > 츠루기도 제법....! 올ㅋㅋㅋ 제법인데?ㅋㅋ
# 그런데 사실 제로조에 대해서 아는게 많지 않아서.. 그냥 제 안에 있는 '제로조의 느낌'을 썼습니닼ㅋㅋㅋㅋㅋ
# 본격_주제도_내용도_흐름도_결말도_없는_제로조_연성물.hwp
".....슈?"
찾고있던 실루엣이 눈 앞에 나타난다. 하쿠류는 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이름을 입에 담았다.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슈는 대답이 없다. 듣지못한 것인지 미동조차 없었다. 슈의 시선을 앗아간 것이 무엇인지 하쿠류의 위치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친숙한 뒷모습이 낮게 쭈그려있을 뿐. 하쿠류는 조금 인상을 구겼다. 녀석은 지나치게 태평하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은 궁극에 가까워지기 위해 일분일초가 중요한 때다. 그런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무래도 용납하기 어려웠다.
"......."
하지만 타박은 나오지 않았다. 불어오는 바람소리에도 요동하지 않는 이유. 모두가 필사적인 이 때에 그를 한가롭게 만드는 것의 정체. 하쿠류는 슈가 바라보는 것을 향해 다가간다. 나름대로 발소리도 죽이며 고개를 내밀었다. 사람이 불렀는데도 알지 못할 정도의 집중력이라니. 연습시간도 잊어버리고 몰두할 만큼의 중요성이 있는 것일까. 그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에 담기고 있을 그 어떤 것에 대해서. 하쿠류는 조금, 궁금해졌다.
"....개미야."
".......!"
언제부터 자신이 왔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을까. 처음 이름을 불렀을 때부터? 아니면 조심조심 다가가던 순간에? 묻지도 않았는데 슈에게서 대답이 나온 덕분에 하쿠류는 흠칫 놀라 물러섰다. 슈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계속해서 그래왔듯이, 그저 한 장소에 눈길이 머물러 요동하지 않았다. 개미. 개미 행렬인가. 작고 검은 것들이 일렬로 줄을 지어 제법 빠르게 움직였다. 조밀조밀한 더듬이와 검은 몸뚱이. 하쿠류의 시선이 자연스레 슈를 향해 옮겨간다. 슈와 개미, 조금 닮았나? 개미떼에 집중되어있는 눈빛은 아이처럼 순수했다. 아니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그는 두어번 헛기침을 흘렸다.
"뭘 하는거냐. 다들 널 찾고있다고. 대체 이런 곳에서 무슨 쓸떼없는 ㅈ...."
"참 열심히 살고있지?"
하쿠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의 근원지를 쫓는다. 어디일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답은 의외로 금방 나왔다. 그리고, 아주 간단한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늘 이런식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 녀석에게는. 이 녀석 만큼은 마음대로 주물러지지 않는다. 하쿠류는 작게 한숨을 흘리며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그야, 개미니까."
"......그런가?"
여태까지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던 주제에 조금,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슈가 말하는 것과 슈가 행동하는 모든 것을 하쿠류가 이해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슈와의 대화는 어쩐지 어렵다. 알듯말듯한 모호함이 그 안에 숨어있어 쉽사리 찾아낼 수 없었다. 저 녀석이 바라보는 이상. 저 녀석이 찾고싶어하는 그 어떤 것. 쉽사리 발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슈는 궁극에 가깝다. 적어도 하쿠류는 그렇게 믿었다. 그는 물끄러미 슈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지천에 널려있는 개미떼의 모습 그 어디에서 스스로의 삶과 마주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슈 스스로도 모를 일인지도. 갑자기 슈가 옷을 털며 일어선다. 하쿠류는 빠르게 시선을 떨어뜨렸다. 슈라면 그런 하쿠류의 움직임마저 알아챘을지도 모르지만. 괜히 팔짱을 끼며 등을 돌렸다. 빨리 돌아가자. 앞장 서서 걷기 시작한다.
슈는 잠시 웃었다. 개미떼에게 작별을 고하고, 말없이 그의 뒤를 따른다. 궁극의 색을 닮은 하쿠류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다. 앞서 걷는 하쿠류의 걸음걸이 사이사이로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비친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다. 바람을 닮은 머릿결도, 무표정한 눈빛도, 그 뒤에 숨어있는 아이같은 서투름도. 모두, 손에 닿을 것 같다. 하지만 슈는 웃는다. 그저 쓸쓸한 듯, 작게 웃으며 하쿠류의 뒤를 따랐다.
"요즘 츠루기랑은 어때?"
슈가 묻는다. 하쿠류의 걸음이 멎었다. 그는 말없이 슈를 돌아보며 조금 인상을 찌푸렸다. 노려보는듯도 했지만 슈는 익숙한 듯 눈빛을 흘린다. 웃음으로 받아넘기며 조용하게 물었다.
"여전히 찬바람 맞고있어?"
"......."
진심이다. 장난이 담긴 물음은 아니었다. 낯선 질문도 아니다. 하지만 하쿠류는 언제나 그랬듯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슈는 조금 쓸쓸한듯 웃었다. 그건 참 힘들겠다, 하쿠류. 위로하며 말한다. 그러나 슈의 목소리는 하쿠류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츠루기 쿄스케. 그에 대해 생각한다. 하쿠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슈가 다시 그 뒤를 따랐다. 츠루기를, 그 녀석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하쿠류가 말하기 시작한다. 슈가 귀를 기울였다. 그 녀석, 피프스 섹터를 배신했대. 하쿠류의 말이 이어진다. 슈는 계속해서 귀기울였다. 이제 그 녀석은 어떻게 되는걸까. 하쿠류의 걸음이 멈춘다. 덩달아 슈의 걸음도 멈췄다.
"너무 걱정하지마, 하쿠류. 전부 잘 될거야."
슈는 또 다시 웃었다. 하쿠류의 시선은 하늘 높은 곳, 갓 에덴을 벗어난 저 하늘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슈는 그것을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츠루기를 동경한다.'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하쿠류의 지난 목소리를 기억해본다. 동경한다는 의미 속에 감춰져있던 실제들을 기억해냈다. 말로 표현해낼 수 없었던, 하쿠류의 마음 깊은 곳에 담겨두어야만 했던. 그것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동경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의 감정을 알았다. 그 자신이었기에 알았으리라. 그 자신이었기에 아무 것도 듣지 못했어도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더더욱, 그를 용서할 수 없었으리라. 슈는 하쿠류의 심장 속을 가득 메운 두 개의 감정을 알았다. 그리고 그 감정 앞에 자신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역할임을, 슈는 알고있었다.
하쿠류는 다시 걸었다. 슈가 다시 그 뒤를 따른다. 두 사람은 양성소로 돌아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맞닿지 않은 침묵만이 공허한 바람 소리를 품은 채 그 자리를 맴돈다. 그 곳에 궁극을 향해가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서투른 두 사람 또한 그곳에 있다. 오랜 시간 계속된 두 사람의 침묵은 함께 나아가야 할 장소 앞에서 깨져버렸다. 하쿠류도, 그리고 슈도. 그것이 당연한 것임을 알았다. 그들에게 필요한 일상임을 느낀다. 열심히 살고있지? 그 질문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누구를 위한 물음인지, 누구를 위해 필사적인 것인지. 하쿠류는 공을 날리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