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上 (신도키도) 글상자/Inazma 112013. 9. 10. 22:26
# 신도가 키도를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뻘소리를 주워듣고 써본 연성물
# 성제님은 본격적으로 나오기도 전에 이야기가 끝나버린 본격 뒷내용 없는 이야기
그 사람은 처음부터, 나의 하늘이었다.
키도와 신도의 이야기
하 늘 (上)
by.Bido Enhuki.
"타쿠토, 회장님께 인사드려라. 회장님, 제 아들녀석입니다. 타쿠토라고 하지요."
내가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고작 다섯살에 불과했다. 교양있는 음악이 흐르고, 보랏빛 와인잔이 부딪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어른들의 말이 오가는 자리.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시시각각 인형처럼 웃어대는 그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 사람만은 유일하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태안경 너머로 비치던 적안이 무언가를 갈망했던 듯, 그는 때때로 먼 허공을 응시하곤 했었다. 같은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그는 이 공간 안에 존재하지 않는것만 같았다.
"신도.... 타쿠토입니다...."
나는 그 사람의 아버지에게 허리를 굽혔다. 일초, 이초, 삼초. 집에서 배운 대로 속으로 삼을 센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슬며시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바라보니, 왠일인지 그는 허공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흠칫 놀라 다시 고개를 숙이는데, 그 사람이 스스럼없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네가 신도 타쿠토인가."
낮고, 조용한 목소리.
"나는 키도 유우토라고 한다."
귓가로 찾아든 목소리가 오래도록 울려퍼졌다. 그 사람의 손이 내 시선에 잡혔다. 그러나 악수라는 것은 어린아이들이 하기에는 어려운 인사였고, 나는 갑작스럽게 내밀어진 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침묵이 흐르도록, 나는 그가 내민 손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타쿠토. 유우토군이 악수를 청하잖니."
"허허. 괜찮습니다.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것 같군요."
내 아버지와 그 사람의 아버지가 번갈아가며 말했다. 그래도 나는 손을 움직이지 못했고, 그 사람의 얼굴이 코 앞으로 다가올 때 까지도 같은 자리에서 서있었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했다. 흠칫 놀라 어깨를 떨었지만 그는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부드럽게 겹쳤다. 그는 잡은 내 손목을 천천히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렸고, 가볍게 흔들었다.
"이게 악수라는거다. 상대방이 손을 내밀면 그 손을 맞잡고 흔드는거지. 어렵지 않단다."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의 손은 생각보다 작았다. 아직 어렸던 내게 당시 중학생이었던 그의 키는 꽤 크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손은 역시 어린아이였다. 그 작은 손이 두어번 내 머리를 다독였다. 단 한번도 본 적 없었던 그 사람의 미소가 아주 미세한 순간 그의 얼굴 위를 스쳐지났다. 나는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온 몸이 굳어버린 것 같은 치리한 기분에 나를 맡길 뿐이었다. 어른들의 웅얼거리는 소리도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또 다시 먼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려버린, 그 사람의 타는듯한 적안 만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타쿠토군이 피아노에 높은 재능을 보인다지요? 가능하다면 한 번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의 아버지가 제안했다. 내 아버지는 나의 재능을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흔쾌히 승락했기때문에 나로서는 빠져나갈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걸음을 옮겼고, 파티장 앞쪽 무대에 놓여진 피아노에 앉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가지런히 두 손을 피아노 건반 위에 얹었다. 그리고, 흑백의 선율을 따라 흩퍼지는 리듬 위에 올라탔다. 모두가 나를, 내 손가락만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는 그 사람의 눈빛만이 느껴졌다. 슬픈 기색을 띄던 그 사람의 적안이 나를 오래토록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어떻게 연주를 마쳤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점점 더 나를 옭죄여오는 그 사람의 시선만이 기억날 뿐이다.
하지만 연주가 끝나 박수가 터져나올 시점에, 그 사람은 이미 파티장 안에 없었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예의를 갖춰 사람들에게 일일히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 사람만을 찾았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북적이는 어른들 틈에 그 사람은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홀연히 사라져버린 사람. 그러나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의 손길을, 몸짓을, 그 슬픈 표정을 다시 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내 얼굴 위에도 아버지들같은 가식적인 미소가 떠올라 살아있는 사람이 되지 못할것만 같았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어떤 길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을 파티장 테라스에서 다시 발견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를 발견한 곳은 테라스에서 내려다보이는 넓은 잔디 위였다. 그는 화려한 조명빛이 반짝이는 파티장을 빠져나와, 눅눅히 가라앉은 밤의 달빛 아래에 있었다. 딱딱한 검은 양복과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복장과 어울리지 않는 붉은 로브를 어깨에 두르고, 아름다운 적안마저 가려버리는 푸른 고글을 쓰고, 그 자리에 있었다. 통, 통, 소리와 함께 그 사람의 발치에는 작은 공하나가 머물렀다. 발등을 타고 올라 무릎으로, 무릎을 타고올라 머리 위로. 손을 제외한 그 사람의 몸 전체를 돌아다니며 통, 통, 소리를 내는 축구공은 그야말로 그 사람과 완전히 하나가 된 듯 했다. 그 사람은 그 곳에서 혼자 축구를 하고 있었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곳에서. 그 사람은 웃고 있었다. 조그맣고 볼품없는 둥근 공 하나를 끊임없이 좇으며, 그 사람은 처음으로 웃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날부터 그 사람은 나의 하늘이 되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그 사람은 파티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내가 그 사람을 다시 만난 건 그 로부터 십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였다.
# # #
"오늘의 시합은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돼. 제국중은 강하다. 힘든 시합이 될거야. 하지만 너희라면....."
엔도 감독님의 마지막 목소리가 시합장 안에서 울려퍼졌다. 하지만 나는 감독님의 말을 제대로 귀에 담을 수 없었다. 같은 필드 위에, 그 사람이 있었다. 불과 삼십걸음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거리. 그 곳에 그 사람이 앉아 선수들을 향해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그토록이나 답답해했던 양복.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글. 여전히 그 사람은 아름다운 적안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 빛나보였던 얼굴을 잊을리 없었다. 그런가. 여전히 축구와 함께 있는건가. 하지만 그토록이나 공을 차며 즐거워했던 그가 어째서 피프스 섹터에.
십년 전 그는 이 이나즈마 도시의 영웅이었다. 세계의 영웅이었다. 나는 파티장에서 그를 만나볼 수 없었지만 오래토록 그의 축구를 지켜봐왔다. 그 해와 그 다음해. 그라운드를 달리며 세계를 지배해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봐왔다. 공을 쫓으며 즐겁게 웃고 신나게 땀을 흘리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그 사람. 모든 필드를 지배해 게임을 풀어가는 그 사람의 모습을 동경해왔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어째서 피프스 섹터에. 어째서 있어서는 안될 저 자리에 있는 것인가.
"....도 타쿠토!"
"아, 예!"
나는 화들짝 놀라 엔도 감독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동료들의 의아한 표정이 전해졌다.
"시합 직전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거야. 긴장했니? 다들 긴장하지 말고 다녀와. 저 필드를 너희 것으로 만들라는 거다."
"예! 감독님!"
동료들의 우렁찬 대답. 나는 작게 대답하고 필드로 나섰다. 그 사람에게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 시합을 이기고 싶었다. 당신이 일구어냈던 '라이몬'은 여전히 진짜 축구를,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며 웃었던 축구를, 지켜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휘슬이 울렸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그라운드 위에 잡아두었다. 축구공 위에 잡아두었다. 피아노의 건반처럼, 같은 흑백을 지니고 있는 축구공이지만 그 의미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는 십년전 그 날 이미 깨달았던 바이다. 질 수 없었다. 지고싶지 않았다.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발끝에 공을 실었다. 시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는 이미 웃고있었다. 그는 아직도 그 웃음을 잃지 못했다. 그라운드 위에서만, 저 작은 축구공 앞에서만 보여주는 진짜 웃음. 그의 얼굴에는 그것이 있었다. 나는 시합을 완전히 마치고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내가 여전히 그의 발길을 쫓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아버렸다.
# # #
석양이 저물어가는 라이몬 중학교의 작은 운동장. 나는 정신없이 축구공을 몰았다. 한 시합 한 시합 이기며 앞으로 나아갈수록 견딜 수 없는 이 중압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공을 찼다. 아무도 남지 않아 텅비어버린 연습장 위에서 나는 조금도 숨을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해서 움직이다보면 내 안에 남아있는 떨림이 사그라들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계까지 차오른 숨을 들이켜야만이 그 모든 두근거림이 떨쳐질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네가 신도 타쿠토인가."
그러나 나는 걸음을 멈췄다.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갑작스레 느껴져 온 발걸음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네가 신도 맞지? 아직 선수들의 이름이 정확치 않아. 외우고 있는 중이니 양해해다오."
".....코치님."
가까스로 꺼낸 부름은 내가 십년만에 그와 나눠보는 첫 대사였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천천히 내쪽으로 걸어왔고, 나는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카미노 타쿠토라 불린다지? 신의 텍트라. 필드 위에서 너의 플레이는 정말 환상적이더군. 그런데 아직도 집에 가지 않는 건가. 다른 녀석들은 모두 돌아갔는데. 연습도 너무 오래하면 오히려 몸을 상하게 만든다. 자기 관리도 중요하지. 아니, 그래도 캡틴인데 내가 첫날부터 너무 잔소리였나."
그가 쓴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고, 나는 그제서야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예전보다 말이 많아졌고, 조금 더 잘 웃게 되었고, 그리고, 예전보다 조금 더 양복이 잘 어울리는 남자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글을 벗지 않았고 여전히 손이 작았으며, 여전히 축구공앞에서 즐거운 웃음을 짓는다. 그는 내가 차고 있던 공을 순식간에 빼앗아 자기 무릎 위로 올렸다. 통, 통, 통. 축구공은 몇번이고 몇번이고 그의 무릎위에서 춤을 췄다. 떨어질 듯 하면서도 떨어지지 않고 발등으로, 머리로, 발 뒤꿈치로 공을 차올렸다.
"어때. 한 판 해볼텐가."
그가 물었다.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예? 하고 되물었고, 무언가를 인지할 틈도 없이 그는 나와 떨어진 반대 방향으로 축구공을 몰아갔다. 시작한다는 말도 없었다. 갑작스럽게 나를 향해 달려드는 그의 스피드는 무서울 정도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고 공에 시선을 맞추었다. 좌우로 터짚으며 달려드는 발길. 어느쪽으로 들어올 지 알 수 없는 드리블 솜씨. 나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렇게 예측하기 힘든 볼은 처음이다. 나는 그의 발치로 내 발을 밀어넣었고 있는 힘껏 몸을 부딪쳤다. 그러나 내 발이 축구공에 닿았다 싶은 순간, 그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듯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가볍게 차 넣는 슛이 골망을 흔들었다.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이 사람은 나의 하늘이다. 조금도 녹슬지 않았어.
"한 판 더?"
이 사람이 이렇게 능글맞은 웃음도 지을 줄 알았던가. 이번에는 내 쪽에서 그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방심한 틈을 타 공을 빼앗을 작정이었는데 그 사람은 이번에도 가볍게 나를 재치고 골망을 흔들었다. 몇번을 덤비고 몇번을 막아서고 몇번을 움직여도 그 사람의 공을 빼앗을 수 없었다. 도리가 없었다. 나는 결국 그라운드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못하겠습니다. 어떻게 해도 코치님의 공을 빼앗을 수가 없네요."
"라이몬 중의 캡틴이 약한소릴 하는건가."
그 사람은 입가에 웃음을 띄며 말했다. 나는 그 웃음을 알고 있었다. 십년 전 그 날, 어둠 속에서 공을 차며 보여주던 바로 그 표정이다. 얼빠진 얼굴로 그 표정을 바라보던 나는 그 사람의 의아한 시선을 느끼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이 라이몬 중의 코치인가. 이 사람에게, 나는 축구를 배울 수 있는건가. 이 사람. 나의 하늘에게.
"......사실 저는 예전에 코치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꺼낸 건지는 나도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내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람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 예전이라면 언제를 말하는거지?"
"그러니까, 십년 전쯤입니다."
"십년전?"
그 사람의 표정이 더더욱 의아해진다. 눈썹이 꿈틀거리고, 입가가 미묘해졌다. 눈을 가렸어도 그런 세세한 의미는 전해져왔다.
"전 신도 가문이니까요. 유명인사들이 모인다하는 파티에는 종종 따라가야만 했었습니다. 어릴 때, 그런 파티장에서 한 번 뵌 적이 있었습니다. 코치님께서는 저에게 악수를 가르쳐주셨어요."
"아아? 그랬었나? 그런 일을 잘도 기억하고 있군."
당신이 빛나보였으니까요. 이 말은 내 안에만 조용히 묻어두었다.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다. 꺼내면 사라져버릴 것처럼 떨렸으니까. 내가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않자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석양은 점점 더 기울어가고, 어둠이 찾아들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문득,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생겨 입을 열었다.
"그런데 코치님. 제가 기억하기로 그 날 이후로 십년동안 코치님은 그런 행사에 한번도 오지 않으셨습니다. 왜 오지 않으셨던 겁니까?"
"........"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그 사람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괜한 걸 물었나. 아주 잠시지만 웃음기가 사라져버린 얼굴. 말을 잘못꺼냈나 싶어 화제를 돌리려는데, 갑자기 그의 웃음이 터졌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그 이후에, 라이몬 중과 시합을 했다. 엔도를 만났고 고엔지를 만났어. 난 내 인생에서 축구가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했지. 때문에 나는 변할 수 밖에 없었고, 내가 변하자 내 아버지도 변했다. 난 억지로 웃어야만 하는 사람들 사이에 서고싶지 않았어. 키도계를 잇는 뛰어난 수재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글쎄. 뭐랄까. 나는 나를 찾게 되어버린거야."
나를. 찾는다. 그는 미소를 흘렸다. 나는 그게 얼마나 자유로운 미소였는지를 깨달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 그런 자리에는 잘 가지 않았다. 갈 이유가 없었던 거지. 아버지를 설득하는 것은 꽤 힘들었지만 결국 승락해주셨다. 결과적으로 난 축구를 지킬 수가 있었고."
그랬나. 결국에 그는 자기가 정말 웃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갔던 것인가. 자신의 축구를, 지킨 것인가. 나는 그의 웃음을 따라 미소지었다. 그런 축구가 참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한편으로는 어린아이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빛나보였다. 완전히 내려앉은 어둠 아래에서도 그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슬슬 집으로 돌아갈까. 그가 말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냈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작은 손 하나가 내 눈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가만히 그의 손을 응시했다. 내 앞으로 뻗어진 작고 부드러운 손 하나. 그는 십년전 그날과도 같이, 아이처럼 웃으며 내게 말했다.
"아무튼 다시 제대로 인사하지. 내 이름은 키도 유우토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신도."
그리고 나도 이번에는 넋을 놓은채 바라만 보고 서있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세월이 흘렀고, 더 이상 나는 악수가 뭔지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가볍게 흔들며 중얼거렸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키도 코치님."
그는 빛나는 얼굴을 하며 웃었다. 달빛 비치는 어두운 하늘 아래 홀로 공을 튀기던 그 때와 같이, 아주 환한 얼굴을 하며 웃음지었다.
# # #
나는 몇일 뒤, 정치계의 인사권들이 모인 행사장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코치님?"
"아아. 신도인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파티장의 구석에서 홀로 와인을 마시며 서있는 그는 역시 키도 유우토였다. 파티장 안에서는 나름대로의 예의라고 생각했는지 고글은 쓰지 않았다. 대신 적안과 어울리는 붉은색의 반무테 안경이 그의 콧등 위에 걸쳐져 있었다. 그의 적안을 보는 것은 십년만이었다. 그 때와 다름없는 아름다운 홍옥의 빛깔. 한참이나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나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저 웃음지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파티장 안에서의 그는 제대로 된 웃음을 지어보이지 못했다. 나는 어물쩍거리듯 물었다.
"그런데 코치님. 어떻게 여길....."
"흠. 역시 어색한가."
그가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말이다. 중요한 자리라는 데 참석하지 않을 수도 없고 해서 오게 됐다. 하지만 역시 좀 답답하군."
그는 살짝 넥타이를 풀었다. 어렸을 땐 잘 몰랐지만 그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나 느끼는 것이 표정에 잘 드러나는 타입인 듯 했다. 답답하다는 표정이 그의 얼굴 위에 한가득 퍼져있었다. 엔도 감독님의 말에 의하면 그 사람은 한 때 '포커 페이스'로 살았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녀석이 표정을 되찾은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엔도 감독님은 웃었다. 그러한가. 이 사람이 표정을 찾은 것이 좋은 것인가. 하지만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은 내 동료들이, 이 정도가 표정을 되찾은거냐며 숙덕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래. 이 사람의 표정은, 어쩌면 사실은 아주 미묘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를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들고있던 잔을 떨어뜨리고, 삽시간에 경직된 표정으로 한 곳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되버린 것은, 그 다음 순간 일어나버린 일이었다. 나는 코치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신사숙녀 여러분! 잠시 주목해주십시오! 오늘 이 자리가 무척이나 특별한 날이니만큼, 저희가 아주 특별한 손님을 여기로 모셨습니다!"
그 곳에서 내가 만난 것은.....
"이 분은 현재 우리나라 축구계의 최 정점에 서계시며....."
십여년의 세월동안 그 사람을 지탱해주었던 그의 날개.....
"이 시대 모든 소년들의 우상인.....!"
그 사람의......
"성제, 이시드 슈지 님이십니다!"
하늘이었다.
쨍그랑.
들고있던 잔이 산산조각남과 동시에 그가 중얼거렸다.
"고엔지....?"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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